홀로서기 중입니다.
본디 혼자 있는 것을 잘 못했다. 외로움, 고독을 견디지 못해서 누군가가 함께 있어야만 했다. 그것도 안되면 무언가 몰입한 상태여야 했다. 관계든 일이든, 고독의 틈이 느껴지면 더 깊이 파고들었다. 즐기는 것을 넘어 싫증이 날 때 비로소 멈출 수 있었다.
타인의 시선 속 나는 ‘친화력 갑, 유머 있는 사람’으로 불린다. 낯선 이들 과도 쉽게 대화하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예상처럼 많은 사람을 곁에 두지는 않는다. 내밀한 소통과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기까지, 나름의 마음 기준이 있었다.
'예의와 선함’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이 선을 벗어나면 마음이 식었다. 아마도 존중받고 싶은 내면의 욕구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 까다로운 기준을 넘어 마음에 단단히 이어진 사람들은 고독의 무게를 가뿐히 덜어주는, 삶의 활력소 같은 존재가 되어 주었다. 너무 애틋하고 소중한 존재이기에 이들에게는 시간, 물질, 마음… 가진 것을 아낌없이 쏟아냈다. 하지만 그 과도한 애틋함은 결국 집착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이 식는 순간이 찾아오곤 했다. 이성의 관계뿐 아니라 우정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은 결국 단 하나의 존재여야 하나, 우정의 영역에서 어찌 친구가 나 하나 존재할 것인가? 누군가에게 새로운 관계가 생길 때면 마음의 크기가 줄어드는 듯했고, 섭섭함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때마다 정신이 번쩍 드는 멈춤의 신호가 울렸다.
'이 선을 지켜야 한다.'
지난날 질투 어린 마음에 어리숙하게 관계를 정리해 버리고 자책하던 경험은 내 가슴에 깊은 진통을 남겼다. 그러나 그 아픔이 오히려 관계의 성숙을 키워내는 묘약이 되었다.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 세월이 흘러도 관계에 완전히 초연해진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떠나면, 곧바로 다른 누군가 혹은 무언가로 빈자리를 메웠다. 홀로 비어 있는 공간을 용납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걸까. 혼자 남는다는 건 여전히 버겁고 두려웠다. 외로움의 파도가 밀려와 나를 집어삼키고, 우울의 심연으로 끌고 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40대 중반이 되도록 나는 끝내 ‘홀로 있는 시간’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했다. 실망스러운 관계에 집착하지 않기 위해 그럴듯한 포장을 씌워 무언가에 몰두했다. 마치 완벽을 끝까지 추구해야만 하는 사람인 듯 스스로 최면을 걸며 버거운 걸음을 이어갔다. 성과가 마음의 위안이 되기를 바랐지만 그 기쁨은 잠시 스쳐 가는 바람 같았다. 그렇게 꾸역꾸역 버티다 결국 번아웃에 이르렀다. 사는 게 버겁고 지치고, 더는 즐겁지 않았다. 길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삶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그제야 마음의 질문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누구일까?”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무기력한 시간, 내면의 신음과 고통이 크게 울려 퍼졌다. 스스로에게 수없이 묻고 또 물었다.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삶의 공백 앞에서야, 비로소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산산이 부서진 듯한 시간, 남모르게 흘린 눈물은 외로움의 깊은 문을 두드렸다. 결코 맞서지 않으리라 버티던 마음은 어느새 눈물 앞에 잘게 쪼개졌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한 가난한 마음 앞에, 어느새 푸른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제야 홀로 설 용기가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모든 집착에 이별을 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집착을 내려놓자. 고독과 외로움을 피하지 않겠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따뜻이 돌봐주는 내가 되기로 했다.
결심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내면을 거스르는 반대의 길을 택해야 했다. 내가 회피해 온 것들에 대한 정면 돌파이자,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다듬어내는 다짐이었다. 첫걸음은 건강이었다. 내면의 힘은 결국 몸과 맞닿아 있었기에, 그동안 외면했던 영역부터 바로잡기로 했다.
러닝 도전하기.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며 고독을 훈련하기.
미워하고 외면하던 것들을 껴안아 사랑하기.
실패라 치부했던 것들에 다시 도전하기.
그렇게 나는, 진짜 나다움을 찾아가는 '홀로서기 훈련'을 시작했다. 남편에게 받은 러닝화를 다시 꺼냈다. 마음의 결심을 단단히 동여매듯, 끈을 단단히 묶었다. 그렇게 나만의 무대를 향해 드디어 홀로 용기 있게 인생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 나만의 속도로 너무 서두르지 안 돼, 내가 갈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더 힘을 내 나가보기로 했다.
오래도록 쓰지 않은 몸이었기에 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여기저기 힘들고 괴롭다 신음을 보냈지만, 몸은 괴로우나 마음은 기분 좋은 아우성이었다. 설정한 거리의 반을 지났을 뿐인데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에 호흡이 가빠왔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스스로에게 던진 응원이 마음의 에너지가 됐다. 거리가 더해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몸의 수문이 열리며 땀들이 흘러내린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진정한 해방감을 맞이하기 위해 자유를 위해 발돋움하는 나를 여름의 초록들이 응원하는 듯하다. 그렇게 더디고 서툰 발걸음으로 목표 지점에 골인했다. 가쁜 호흡과 함께 눈물과 땀이 뒤섞인 몰골이지만 미묘한 환희의 웃음이 멈춰지지 않는다. 결국 그럼에도 나는 지지 않고 해냈다. 시작한 것을 끝까지 걸어내며, 스스로를 이겼다.
나는 오늘도 고독훈련의 시간을 단련하기 위해 러닝 무대에 섰다. 조금씩 근육이 붙듯, 자신감도 쌓여 간다. 지금 이 시간의 조각들이 켜켜이 쌓여 더 단단한 나를 만들 것이다. 머지않은 그날 홀로 선 나는 외칠 것이다.
"굿바이! 집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