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위험한동거
눈앞에 눈뻘건 내모습을 비춘 TV가 보인다. TV옆에 결혼식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요한 신부화장이 지워짐에도 멈추지 않고 흐르던 눈물, 도데체 왜 난 결혼식날 왜 그렇게 울었던것일까.
전생에 나라를 구한거 아니냐는 말을 수백번 듣고 결혼한 남편 덕분에 난 일하는동안 친정엄마가 아이를 캐어해주시는 복받은 워킹맘으로 등극했다.
당연히 친정엄마랑 살면 좋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와 생각들은 주변워킹맘들에게 부러움을 샀다. 물론 너무 좋았다. 일하는동안 아이들의 저녁걱정이 줄어들었음은 일의 효율뿐아니라 나의 기분마저 좋게 만들었다.
합가두달이 될때까지 소소한 부딪힘과 의견충돌은 지속되었고 어느덧 엄마에게 난 결혼한 딸이 아닌 결혼전 엄마의 훈계가 필요한 딸이 되어있었다.
아침잠이 많은 3학년 아들이 못일어나는날 아이를 깨우면서 내 언성이 높아지기라도 하면
“넌 뭐 옛날에 잘 일어났냐? 아침부터 애한테 소리지르지마” 라는 말로 내 입을 막았고 딸아이가 핸드폰을 오래 보는것 같아 그만보라고 하면 너도 핸드폰 들고 살면서 애한테 어떻게 그런말을 하니..라고 꼭 마치 내가 아이들한테 훈계하듯이 내행동을 비난하는 한마디씩 거드셨다 그럴때마다 그런엄마가 짜증나고 미웠다
어느날은 아침식탁에 반찬이 인스턴트 햄이 보이길래 아이들한테 김치먹어, 김싸서 김치먹으라고 했더니 “지가 먹이는 햄버거나 피자는 괜찮고 어쩌다 내가 한번 주는 스팸은 몸에 나쁘지?라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엄마 정말 왜그래“ 애들이 있는 자리에서 난 소리를 질렀고 휘둥그래진 아이들의 눈 크기가 내가 지금 얼마나 잘못된 행동을 하는지 알려주었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로가버린 오빠로 엄마 아빠가 적적 하시고 힘드실까봐 아래윗집 복층구조의 집에서 처가와 함께 살기로 큰 결심을해준 남편에게 늘 고맙고 미안했던 내마음이 점점 고마움은 없어지고 원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출근 하는길에 차안에서 훌쩍훌쩍 우는 날 보며 남편은 미안해했고 난 엄마땜에 힘든 나를감춰야했다.”아니야 자기가 왜 미안해 원래 딸이랑 엄마는 이렇게 싸우고 살아“하루종일 스팸생각에 짜증났던하루였다
어쩌다 아이학교 엄마들 모임이나 다른 모임에 가면 다들 나에게”너무 좋으시겠어요”라고 한마디씩 한다”아니요 ,막상 같이살면 안좋아요”라는말이 정말 앞니를 뚫고 나올 정도까지 목위로 올라오지만, 내얼굴에 침뱉기는 또 싫은건지”그냥 뭐 애들이 좋아하죠”
우리집은 아이들이 그날그날 해야할 숙제를 다 하기전까지는 그 어떤 미디어도 허용이 안된다.
퇴근후 집에 들어왔는데 소파에서 신나게 게임을 하는 아들을 보니 벌써 할것들을 마쳤구나 라는 생각에 반갑게 미소지으며 칭찬해주려는 순간, “할머니가 게임해도 된다고 해서 하는거에요“라고 말을 한다. 난 이성을 잃었고 화살은 엄마몫이었다”엄마 제발 내가 하라는대로만 하게 두세요. 그냥 내가 도와달라는것만 해줘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입학후 3년동안 그습관을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그걸 하루아침에 할머니가 해도 된다는 핑계를 만들어준것에대해 너무 화가났다. “할머니가 하랬다고 해? 너 엄마 아들아니야? 왜 엄마랑 한 약속을 안지켜?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네 할이 해!”소리를 지르니 울상을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아들을 잡고 “거봐 할머니까 엄마오기전에 끄라고했잖아...”라고 말하는 우리엄마의 모습에 그동안 쌓였던 모든화들이 터져나왔다. “엄마! 지금 애한테 뭐라는거에요”“할머니가 그정도도 못해주니??게임좀하면 어때서 ” “엄마 제발 내가 해달라는거만 해주세요 나올때까지 애들하고 있어주시고 저녁밥만 챙겨주시고 다른건 참견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막말을 해버린 나는 엉엉 울었다.
서운함을 감추지 못한채 엄마도 울고 아들도 울고 모두가 울었다.
선배들이나 어른들이 늘 말씀하시는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해라 돌아가시면 다 후회되니까..
.라는 말은 친정엄마와 함께 사는 나에겐 앞으로도 당연하지만 어려운 숙제이다.
내바램은 하나다. 그때 알 것을 지금알수있다면.
지금마음을 미리 알았다면 결혼식날 난 울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