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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리지하 Jan 22. 2023

거짓말이 필요해

엄마의 거짓말

어느 초등학교 1학년이 있는 집과 마찬가지로 매일밤 다음날 있을 아이의 받아쓰기 연습이 한창이었다.

몇 개를 맞고 틀리던지 관심 없던 아들 녀석이 왠일인지 적극적이었다.

다음날 등교 직전까지 연습을 열심히 하고 아이의 등교 후 바로 핸드폰을 진동에서 벨소리로 바꿨다. 받아쓰기 점수를 알려주려 전화할 아들의 연락을 놓칠까 봐 걱정이었다.

초보 학부모의 아이 등교 후 집의 상태는 겪어본 사람은 알 수 있듯이... 그 정리를 하다 보면 아이의 하교 시간이 된다. 나 역시 그랬다. 1교시... 2교시... 3교시.... 받아쓰기를 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왜 전화 안 하지?? 기다림의 지루함은 ’ 전화하기로 한 약속을 안 지키면 휴대폰 엄마가 뺏을 거야..‘라고 협박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했다.

학교의 하교종이 울렸다. 우리 집은 아들의 초등학교 바로 뒤기 때문에 학교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띵동~ 아들이 교문을 통과했다는 알림이 왔다. 후다닥 뛰어 뒷 베란다로 뛰었다. 아이의 하교 동선을 보려고 베란다 창문에 매달리다시피 고개를 내밀고 아이를 기다렸다  멀리 아들이 보인다. 실내화가방을 흔들며 깡충깡충 뛰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 오케이, 시험결과가 좋구나” 내 바람대로 짐작을 한다.

집에 와서 물 마시고 화장실 가고.. 우유 먹고.. 티브이 켜고.. 뭐 그리 할게 많은지 얘기할 틈을 주지 않는다.. 소파에 앉는 순간.. 아들아 받아쓰기는???”

“.....”

“괜찮아 엄마한테 말해봐”

“그게.. 엄마...”“ 응 빨리 말해”“ 백점 맞을 수 있었는데...”

’아... 아니구나..’“근데?? 어려웠어?

”아니 그게 아니고 실수를 했어.. 분명히 아는 거였는데 헷갈렸어..

”아 …그랬구나 근데 아들아,헷갈린다는 건 모른다는 거야... 아는 건 절대 안 헷갈려 “

아쉬운 마음에 초1에게 어울리지 않는 조언? 이 이어진다...     

괜찮아 점수는 중요하지 않아. 등교 전 아침까지

열심히 한 게 중요한 거야.

으... 응? 뭐라고? 점수가 중요하지 않다고?? 내가 지금 뭐라는 거지?... 혼자 씁쓸하게 웃음이 나온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나로서는 말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지금 난 엄마니까..... 엄마로서 해야 할 말을 해줘야지... 비록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 해도... 아이의 표정이 살짝 밝아지더니..”엄마 유튜브 봐도 돼요?? “ 아오 틈새를 놓치지 않는구먼”“응... 응. 그래 해... 해...”

지금 우리 아들 5학년.... K-초등 학부모 초보딱지를 뗀 나는 이제 안다... 그리고 후배 학부모 엄마들한테 얘기해 준다. 그 받아쓰기 하나 더 맞고 하나 틀리고는 아이의 학교 생활과 공부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다 부질없다는 거라고....... 물론, 그들은 들리지 않겠지만....           


어릴 때부터 통통했던 엄마 체질을 닮아 아들 역시 통통했다.

운동회에서 개인전 달리기는 늘... 얼른 해치워버리고 싶은 과제였다.

물론 체육수업시간에 계주 대표를 뽑기 위한 달리기 모의 평가가 있었기에 본인의 실력이 학급에서 어느 정도순위 인지는 다들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줄 서기에 따라 같이 뛰는 친구가 달라지기 때문에 6명 중 3등으로 손등에 찍히는 순위권 도장을 자연스럽게 은근 기대하게 된다.

자기는 결승점 앞에 가서 찍어... 내가 중간지점에 있을게.. DSLR을 들고 있는 남편을 결승점으로 보내고 나는 중간지점라인 가까이 자리 잡고 앉아 휴대폰을 들었다.

첫 번째 팀 출발소리가 들리고... “줄밖으로 나가세요....”“저기요” 뒤로 들어가세요 안 보여요.. “

다들 본인들의 아이의 달리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조금씩 머리를 내미는 상황이었다.

남일이 아니었다... 다음번이 우리 아들이다 핸드폰을 다시 확인하고 남편의 위치를 확인하고 아들이 뛸 때 나의 동선을 살짝 스캔하소 핸드폰카메라를 동영상으로 바꿨다...‘탕’ 총소리가 나고 뛴다. 아들이 달린다. 그렇게 넘어질까 봐 걱정하면서 뛰지 말라고 금이야 옥이야 키우던 아들이 뛴다.. 뛴다.. 뒷거름질로  동영상을 촬영하면서  나도 같이 뛴다. 엄마들 사이를 비집고 결승점 가까이 먼저 막 뛰어가... 달려오는 아들을 찍는데... ‘아이고야... ’ 아들이 넘어졌다, 엎드려서 일어날까 말까 고민을 하는 모습이다.‘ 몇 초 후 아들이 다시 달린다, 그나마 유지했던 세 번째 네 번째도 아닌 다섯 번째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1등이 끊고 지나가서 줄도 없는 결승점에서 아빠는 사진을 찍고  환하게 웃으면서 아들에게 엄지 척을 들어준다.

’ 엄지 척은 무슨.... 아니 거기서 왜 넘어져??‘ 아이에게 달려가 다리를 확인하고 부상이 없다는 걸 알고 학급자리로 보냈다. 외손주 운동회라고 오신 친정부모님과 함께 저녁식사로 운동회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누운 후... 아들이 먼저 달리기에 대한 말을 꺼낸다. 넘어지지 않았으면 3등은 했을 텐데 엄마. 그렇지?’”응 그랬을 거 같아.. “

”근데 아들아, 엄마는 1등보다도 네가 더 멋있었어... 넘어졌다가 일어나서 다시 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너무 멋있고 자랑스러웠어.”

 뭐 자랑스럽기까지..... “진짜야 엄마??”

“ 당연하지.. 이런 경험이 정말 중요한 거야”

“난 엄마가 실망하고 창피할 거 같았어... 미안해”

“에이... 엄마 아빠는 네가 정말 멋있었어”“1등은 못하는 걸 해낸 거야”
 1등보다 멋있긴... 안 해도 되는 경험을 한 아들에게 어차피 1등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던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좋은 말이었다. 물론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아니 거기서 왜 넘어져.... 마음에 있는 솔직한 말은 하지 못했다.

친정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 너도 한 번도 1등 못해봤잖아.. 안 다쳤으니 다행이지. 그냥 너 닮았다 생각해”그쵸엄마... 이미 넘어졌고 다시 되돌릴 수 없는데 뭘 아쉬워하겠어요..

넘어지는 순간 “에이”라는 목소리가 적나라게 너무 크게 녹음이 되어있어서 그날의 동영상은 아들에게 아직도 보여주지 못했다.

아들이 나의 한숨소리에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 클 때까지 들키지 않고 보관해놔야 한다.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 학교에 있는 아들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엄마 마음을 철렁 내려앉게 한다.

받으면서도 손이 덜덜 떨렸다.

“엄마.. 내 짝이 나 때렸어” “뭐?? 맞았다고? 어디를? 왜? 괜찮아?

“얼굴 때렸는데 괜찮아 이제”“ 응 다행이네...”괜찮으면 다시 자리에 앉아서 남은 시간 잘하고 와 “하고 끊었다. 전화를 끊고 아니... 미친 거 아니야? 요즘세상에 때리는 애가 있다니... 이걸 학교를 쫓아 가? 말어? 담임한테 전화해야지... 그냥 넘어가면 또 때릴지도 몰라... 아오 짜증 나.. 앉았다 일어났다 혼자 난리난리를 쳤다.

하교 후 돌아온 아이는 상황을 대충 설명했다..”그러지 말고 처음부터 다 천천히 말해봐.. 엄마가 알아야 도와주지.. “”아니야 엄마 걔가 사과했어 “ ”응.. 사과했음 된 거지..? 근데 너는 왜 맞고 가만히 있었어? “

” 친구가 아플까 봐 안 때렸어.. “

응... 응? 뭐라고??

응 그래, 친구가 때린다고 같이 때리면 안 되는 거야 너무 잘했어

친구가 아플까 봐 안때렸다니... 넌 안아프니?? 내 맘은?? 잠든 아이의 얼굴 한 번 쓰다듬고 다리를 주물러주면서 한바탕 난리 쳤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 담부턴 누가 때리면 맞고만 있지 말고 너도 때려 절대 먼저 때리지만 말고... 치료비는 엄마가 얼마든지 물어줄 테니까 걱정 말고... 그리고 때리고 나서 미안하다 사과한다고 뭐 괜찮은 건가?? 걔랑 놀지 마... 아들아 엄마 맘속의 진심이 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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