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나는 늘 바쁜 사람이다.
결혼과 동시에
남편은 식당을 열었다.
첫 시작은 늘 어수선한 법이지만,
우리는 예상보다 더 버거운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직원 월급조차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빠듯했고,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을 돕기위해
아이를 낳은 지 겨우 50일이 지난 겨울.
나는 식당으로 나가게 되었다.
온 가족이 함께 했다 수술 후 힘든 어머님도 돈을 드린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흔쾌히 승낙하셨고
친정 엄마 역시 돈앞에 승낙 하셨다.
너무나 다행인것은 아이도 엄마 아빠를 도우려는지
울음도 짧고 순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찬 바람을 뚫고 식당으로 향하고,
그날의 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가게 불이 꺼질 무렵
시계를 보면 새벽 3시였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 얼굴을 잠깐 바라보다
무거운 눈을 감았다.
아직도 내 몸은 회복되지 않았고,
부은 다리에 맞는 옷조차 없어
임신 때 입던 헐렁한 옷을 꺼내 입고
주방과 홀을 오갔다.
그 아이는
엄마가 아닌,
할머니의 품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끝냈다.
2주는 친정엄마가,
그다음 2주는 시어머님이,
그리고 주말엔 내가.
나는
엄마,
일꾼,
며느리,
딸,
동시에 해내야 했다.
그러던 중
어쩌다 마주한 시어머니는
여전히 나를 모른 척했다.
한집안의 며느리로서,
자신의 손주를 낳은 사람으로서
아무런 말도, 아무런 눈빛도 건네지 않았다.
그 침묵은 말보다 더 무거웠다.
나 역시 더 이상 신경 쓸 여력도 없었다.
우리 부부는 양가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며 돌봄 비용도 드려야 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지만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생활비는 늘 부족했고,
남편에게 내 보험료나 휴대폰 요금을 말하는 것조차
미안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주말에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래야만 아이용품,보험,통신비등 지출을 메꿀수 있었다.
아이를 낳고 단 한 번도
‘엄마의 휴식’이라는 걸 누려보지 못한 채
6개월을 쉬지 않고 일만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텨가던 어느 날,
문득
나는 나 자신이
불쌍해졌다.
집은 엉망이였으며 내 몸도 엉망이 되어가고
나의 마음상태도 엉망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떤 날은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이 낯설었다.
젖은 머리, 퀭한 눈,
늘어진 티셔츠,
아이 손을 잡아줄 틈도 없이
식당 냉장고 문을 닫으며 내뱉는 한숨.
“내가 원했던 삶인가?“
“이건 내가 바라던 삶인가.”
그 질문이 마음 깊은 곳에서 자꾸 올라왔다.
내 아이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줄 여유조차 사치인 삶.
내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하나 없는 시간들.
그 모든 고단함 위에
누구도 알지 못할 외로움이 포개졌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곧 나를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었다.
아무도 내 몸을, 마음을 묻지 않았다
남편은 늘
가게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 걱정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식당이 잘 안 되면 어쩌지,
직원이 나가면 어쩌지,
장사가 망하면…
그 사람은 언제나
앞선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그 불안은 곧 무게가 되었고,
그 무게는 나에게도 자연스레 내려앉았다.
그래서 난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정작 그는
그 사실에 대해 아무 말이 없었다.
미안하다고도,
고맙다고도,
힘들지 않느냐고도 묻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그럴 여유 조차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이를 낳았다.
그것도 노산의 나이에.
그 고된 출산 뒤에
쉬지도 못한 채 바로 남편의 일을 도왔다.
브래이크 타임에는 차디찬 나무의자를 붙여 잠을
자며 그렇게 내몸도 망가져가고 있었다.
그 사람은
내 몸이 어떤 상태였는지
궁금해하지도,
묻지도 않았다.
출산이라는 건
삶과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일인데
그 문턱을 넘은 나에게
단 한 마디 안부조차 묻지 않는 그 사람 앞에서
나는 매번 씩씩한 척을 해야 했다.
아프다고 말하면
그 사람이 더 불안해질까 봐,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그 사람이 더 미안해질까 봐.
나는 괜찮은 척,
웃는 척,
참을 수 있는 척 했다.
하지만,
그 척들은
하루하루 마음속에 쌓여
어느 날부터
서운함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말이라도,
“힘들지?”
“괜찮아?”
그 한 줄,
그 짧은 말이면 되는데.
그 사람의 입에서는
그 말이 끝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내내 혼자였다.
몸도, 마음도.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점점 외로워졌고,
문득문득,
‘내가 이 삶을 왜 시작했을까’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었다.
아이는 나의 전부였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짊어진 채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한 채
매일의 고단함을 혼자 견뎌야 했다.
그 외로움은
언젠가 터질 무언가처럼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내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