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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결혼, 한 번의 이혼

8. 가을의 끝자락, 아이 없이 집으로 돌아온 날

by Jihyun

가을의 끝자락,

바람이 조금씩 찬 기운을 품어가던 어느 날

나는 아이를 낳았다.


기다리던 순간이었고,

벅찬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그 순간,

나는 모든 고통이 눈 녹듯 사라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시어머니에게서 축하의 말 한마디는커녕

전화 한 통조차 오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딸이 아이를 낳았다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어쩌면 가장 아픈 손가락인 내가

상처가 나은 듯해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힘든 나를 위해 손끝 하나라도 보태고 싶다는 듯

내 곁을 분주히 오갔다.


아이를 품에 안은 건 잠시뿐이었다.

이틀째 되는 날,

의사 선생님이 조용히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이를… 대학병원으로 옮겨야겠습니다. 호흡이 불규칙해서 신생아 집중치료실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의사 선생님의 입은 계속 움직였지만

나는 단 하나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저 내 아이가,

작고 여린 그 아이가

이렇게 일찍 세상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앰뷸런스를 타고 낯선 병원으로 떠나야 한다는 현실만

가슴을 깊이 파고들었다.


다 내 탓 같았다. 모든 게 다.


혹시 내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였을까.

혹시 내가 세상에 대해 너무 욕심을 바란건가.

혹시 내가 행복하길 바란 내 욕심 때문일까.


무수한 ‘혹시’들이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가슴을 짓눌렀다.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아이를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바라보던 그 순간,

나는 그저 주저앉고 싶었다.


몸은 출산의 후유증으로 갈기갈기 찢겨 있었고

마음은, 아이 없이 비워진 내 품만큼

공허하고 텅 비어 있었다.


그날 이후 난 지옥에 있는 것 같았다.

몸조리는커녕,

마치 내가 엄마가 아니라

그저 실패한 누군가가 된 것 같았다.


산부인과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

남들처럼 아기를 안고 귀가하는 모습은

나에겐 허락되지 않은 장면이었다.


빈 품으로 집에 돌아온 그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식탁 위에 놓인 미역국도

아기 용품도,

그 작은 아기 침대조차

모두 나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침대에 누워 울고,

소파에 앉아 울고,

밥을 먹다 울고,

밤이 되면 목 놓아 울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산후우울증이라는 게

누군가의 약한 마음이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는 걸.


이건

내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두려움,

그리고 사랑의 무게가 만들어낸 감정이라는 걸.


나는 매일 새벽,

병원에 있는 아이를 향해 기도했다.

아주 작고 약한 그 아이가

내 품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그렇게,

나는 진짜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마음을 부숴가며,

눈물로 다져가며,

하루하루 그 아이를 기다리며.

늘 반성을 했다. 다 내 잘못이라고.


일주일이 지나고,

드디어 내 아이가 내 품으로 돌아왔다.


조그마한 손,

아직은 다 펴지지 않은 주먹,

얕고 빠른 숨결.


그 모든 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그 아이가 무사히 이 지독한 세상의 문턱을 넘었다는 증거였다.


의사 선생님이 “이제 퇴원하셔도 돼요. 폐와 심장 다 이상 없이 건강하고 호흡이 좋아졌어요 집으로 아이와 갈갈 수 있어요”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순간,

나는 온 세상을 안은 듯 안도의 숨을 쉬었다.

눈물은 참았지만,

가슴은 끝없이 떨렸다.


아이를 다시 품에 안았을 때,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동안 흐릿하던 감각이 하나하나 되살아났다.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했고,

팔에 힘이 풀릴까 봐 조심조심 안고 또 안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엄마’가 되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이 아이의 엄마.

나는 마음 한구석에서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어머니.


그분의 단 한 마디,

“아이는 괜찮니?”

“많이 놀랐겠다.”

그 짧은 한 줄이라도.


하지만,

그 기다림은 끝내 허공에 흩어졌다.

아무런 연락도, 안부도,

심지어 짧은 메시지조차 오지 않았다.


그 아이는 그분의 하나뿐인 친손주였다.

그럼에도 그 아이의 존재조차 무시당하는 듯한 침묵에

내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내가 미우니,

손주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걸까?’

‘정말 이 아이는,

그분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일까?’


산후의 몸과 마음은 너무도 약했고

나는 그 서운함을 견딜 힘조차 없었다.

처음엔 참으려 했다.

그러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시어머니의 침묵은

그저 무관심이 아니었다.

분명한 감정이었다.

“너는 며느리도, 가족도 아니다”라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제는 더 이상 인정받기 위해 애쓰지 말아야겠다고.

기대하지 말아야겠다고.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지금,

내가 가장 중요하게 지켜야 할 것은

시어머니의 시선도, 인정도 아닌

내 아이의 웃음이라는 걸.


그 웃음 하나로도

세상의 외면을 견딜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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