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두 번의 결혼,한 번의 이혼

7.세상에 행복만 있지는 않다.

by Jihyun

기다림과 상처 사이, 나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기적처럼 찾아온 생명이었다.

노산이라 불리는 나이에 찾아온 아이.

몸은 조금씩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따뜻했다.

삶이 내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 같았고,

나는 이 기회를 꼭 지켜내고 싶었다.


하지만 행복은 언제나 조용히 찾아오는 반면

문제는 늘 예고 없이 닥쳤다.


시어머니의 무릎에 이상이 생겼다.

처음엔 통증이 있다고 하셨지만

점차 걷지 못하실 정도로 악화되었고

어느 날부턴가 엉덩이로 밀고 다니며 생활하셨다.

수술하실까봐 겁나서 그러신건지 TV에 나오는 관절에 좋다는 식품만 주구장창 드시고 침을 맞으면 된다 한약먹으면 된다 라며 TV에 나오는 것만 믿으셨다.


남편은 도저히 안되겠는지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병원 좀 알아봐줘.

엄마 혼자선 어려울 테니까.”


나는 뱃속 아이가 커가는 몸을 끌고

병원을 알아보고, 진료 예약을 하고,

검사부터 수술 상담까지 모두 챙겼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은

무릎 연골이 완전히 닳아

인공관절 수술 외엔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시어머님께는

그 말 자체가 견디기 힘든 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늙어간다는 것,

누군가의 손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중심이었던 아들의 삶에서

멀어졌다고 느끼는 여러 감정들이

모두 한 번에 터져나온 것 같았다.


결국 수술은 진행되었고,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이제는 재활병원에서

걷는 법을 천천히 다시 배우는 시간만 남았다고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그날.

시어머님은 갑자기 병실에서 소리를 지르셨다.

“내가 이렇게 된 게 다 너 때문이야!

내가 수술 안 해도 됐는데, 너 때문에 병신이 됐어!

수술 안하고 운동만 해도 되는건데 걷지도 못하게!“

수술 후 고통때문에 나에게 퍼부었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 말이 너무 충격적이었고,

억울했고, 참담했다.

물론 연세가 있으시니 수술 후 재활하는 것도 힘드셨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내가 어머님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야 하는건지.

남편도 어쩔줄 몰라했다.

“엄마가 안그러는데 수술해서 힘든기 보다. 당신이 조금만 이해해줘”

이때 알았다. 남편은 만삭의 아내인 나보다 어머님이 먼저 였다는걸.


수술 전, 시어머님은 걷지 못하셨다.

엉덩이로 밀고 다니셨고

화장실조차 혼자선 갈 수 없을 만큼

몸이 무너지고 있었다.

시어머니 눈에는

자신을 ‘병신’으로 만든

‘며느리’가 아닌,

‘적’처럼 보였던 것이다.


나는 만삭인 몸으로 병원을 오갔고

한 손엔 진료기록을,

한 손엔 눈물을 꼭 쥔 채

그 시간을 견뎌왔다.

그 모든 마음이

단 한 번의 오해와 소리로

부정당하는 순간이었다.

아들이 병원을 알아봤다면 .. 그래도 그렇게 말을 하셨을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과할 잘못도,

설명할 여유도 없었다.


나는 단지,

어떤 가족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남편이 어머님 건강 문제로 걱정하기에

내 남편의 어머니이기에 최선을 다 하고 싶었다.

새 생명을 품은 한 명의 여자이자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그리고 이제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가는

그 길 위에서

나는 또 한 번 참아야 했다.

내가 참으면 다들 평안할테니.


나는 악하지 않다.

그 누구도 상처 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왜,

내게만 이 많은 화살이 향하는 걸까.


그날 이후, 나는 더 조용해졌다.

덜 말하게 되었고,

더 천천히 걷게 되었고,

쉽게 웃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다짐했다.

두번 다시 어머님 일에 나서지 않겠다고,

그리고 아이만큼은,

이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와 상처로부터

안전한 세상에서 자라게 하겠다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