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상처 위에 피어난 두 번째 사랑, 그리고 결혼
사랑은 다시 오지만, 관계는 늘 새로 배워야 한다
이혼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아프다.
그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 일이 단지 관계의 끝이 아니라,
스스로를 끌어안는 법을 다시 배우는
긴 여정의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 상처를 서로 안고 있었다.
그는 13년이라는 시간을 나는 5년이라는 시간을
서로의 지난날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만큼
더 조심했고, 더 진심이었다.
그 사람은 내 이혼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고,
내게는 전 남편 사이에서 아이가 있고 언젠가 내가 돌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그 아이가 오게 된다면, 우리 아이로 키우면 되지.”
이 말에 나는 마음의 문을 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상냥했고,
긍정적이었고,
무심한 말 한마디조차 조심스럽게 건넬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따뜻함이,
무너졌던 내 마음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결혼을 결심했을 때,
우리는 조용히, 둘만의 방식으로 시작했다.
결혼식은 하지 않았다.
사진도, 화려한 인사도 없었다.
그저 서로를 믿고 선택한 단단한 다짐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은 단순히 ‘우리 둘만의 이야기’로는 끝나지 않았다.
사랑을 지켜낸 후
우리는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 감정은 확실했다.
남편은 결혼 전까지
어머니께 매달 200만 원씩 생활비를 드려왔다.
그 금액은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하지 않았고,
그만큼 어머니의 일상이자 자부심이었다.
게다가 어머니가 살고 계시던 아파트 역시
남편 명의였다.
결혼 후,
우리는 함께 미래를 준비해야 했고
생활비는 50만 원으로 조정되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동안 쌓였던 서운함과 상실감을
고스란히 나에게 쏟아냈다.
“결혼하더니 애가 달라졌네 “
“너 말만 잘 듣네. “
그 감정은 질투에 가까웠다.
며느리를 맞이한 기쁨보다
애인을 빼앗긴 듯한 허탈함이 컸던 것 같다.
그 후로 어머니는
자신이 받아왔던 것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갇혀
나를 여전히 외부인처럼 대했다.
밥상에 함께 앉아 있어도
내 존재는 늘 어색했고,
무언의 거리감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이사 후에도 그 감정은 이어졌다.
남편이 그동안 어머님께 10년동안 드린 돈으로 전셋집을 얻은 후 어머님은 이사를 가셨다.
그러나 당신 기분이 뭔가 나쁘시면 “내 집을 뺏어갔어!”
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다.
첫 번째 결혼에서 겪어본 적 없는 고부 갈등이었다.
시어머니의 그 질투는,
어쩌면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자신의 인생이 자식에게 의지되어 있다는 걸
감추기 위한 방어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 감정은
고스란히 ‘미움’으로 다가왔다.
나는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지만,
한 가족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선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혈연이 아닌 관계에선
서로가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했지만,
그 노력은 나만의 몫이 되어버리곤 했다.
그럴수록 나는 내 마음을 더 지켜야 했다.
상대의 질투와 감정을 내 탓으로 여기지 않으려 노력했고,
그 안에서도 나를 사랑해 주는 남편과의 관계를
흔들리지 않도록 다잡았다.
그 감정에 흔들리게 되면 또 무너질것 같았다.
나는 단지 한 사람의 아내로,
다른 누군가의 여자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제는 내가 나로서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걸
조금씩,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