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혼 후 5년
이혼 후, 나는 나를 다시 알아가는 시간을 보냈다.
아니, 애써 모른 척해왔던 나와 마주해야만 했다.
불 꺼진 방 안에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밤들,
사람들 틈에 섞여도 외롭기만 했던 낮들.
하루를 살아내는 것 자체가, 나에겐 작은 전쟁이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힘들게 만드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내 감정은 뒤엉켜 있었고,
문득 거울 속 내가 낯설어질 때면
나는 누구였던가를 되물었다.
사랑받고 싶었고,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결국 부서졌고,
그 후로는 아무것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다시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일,
감정을 쓰는 일, 기대하는 일이
모두 낯설고 겁났다.
그렇게 나는 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았다.
회사와 집, 가끔의 친구 모임.
딱 거기까지였다.
어디에도 깊게 발을 담그지 않고,
어디에도 너무 오래 머물지 않으며
나는 나를 조심스럽게 보호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길지 않지만, 결코 짧지 않은 시간.
그동안 나는 조용히 나를 다시 조립했다.
자존감이란 말을 매일 되새겼고,
나를 위로해 줄 사소한 것들—좋아하는 향, 음악, 햇살, 걷기—에
내 마음을 기댔다.
그리고 그 무렵, 그를 만났다. 그 사람 역시 이혼을 했다. 처음에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다.
기대도, 설렘도, 감정도… 아무것도.
그저 무해해 보이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조심스러움이 마음에 들었다.
서로 상처가 있기에 서로 그마음을 알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그는 내게 다가올 때 아주 천천히, 말보다 시선으로 마음을 건넸다.
내 말을 잘 들어주었고,
그 안에서 나를 판단하려 들지 않았다.
내가 조심스럽게 내놓는 이야기들을,
그는 귀하게 받아주었다.
우리는 자주 걷고, 자주 웃었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놀라울 만큼 평화로웠다.
긴장도, 위장도, 애씀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 앞에서 나는 그저 ‘나’였다.
더 꾸미지 않아도, 더 강한 척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나 같은 사람도… 괜찮을까?”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네가 어떤 시간을 살아왔든,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나는 지금의 네가 좋아.”
그 말이 나를 무너뜨렸다.
정확히 말하면, 단단하게 쌓아 올린 가면을 무너뜨렸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그래, 나도 괜찮은 사람일 수 있어”
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한 계절은 참 조용하고 단단했다.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았고,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았다.
우리는 나란히 걸었고,
서로의 속도에 천천히 맞춰갔다.
사랑이 이렇게 다정하고 조용한 것이란 걸
나는 처음 알았다.
이전에 알던 사랑은 늘 증명해야 했고,
늘 불안했고,
늘 끝을 걱정해야 했다.
하지만 이 사랑은
‘끝’보다 ‘지금’을 바라보게 했다.
함께 마시는 커피 한 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저녁,
가끔은 싸우기도 하지만 끝내 풀어내는 시간들.
그 안에서 나는 나를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만나 다시 완성된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한 사람 덕분에
나 스스로를 다시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가끔은 흔들리지만
이제는 안다.
사랑은 완벽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마주할 용기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따뜻하게 자란다는 것을.
지금의 우리가 비록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더라도 행복이란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