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텅빈 마음을 가진 나
병원에서 가게로 돌아온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약을 먹고,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하고,
손님을 웃으며 맞았다.
다시 또 약을 먹고,
다시 또 일하고…
약을 복용하면서부터
머릿속은 희미해졌고
감정의 날카로움도 무뎌졌다.
마음은 잠시나마 편안해졌지만
그 대신 모든 것을 잘 까먹기 시작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견디는 것 말고는
내게 주어진 선택지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결혼 전 그렇게 상냥하고 따뜻했던 남편은
내가 약을 먹는 걸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한심하다는 듯이.
“정신력이 약하니까 약을 먹는 거잖아.”
그 말 한마디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내 아픔을 이해해주기보단
내 아픔을 꾸짖는 말투.
서운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지만
약 덕분일까,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울지 않았고
소리치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삶은 조금씩 나아졌다.
정말, 아주 조금씩.
조금씩 괜찮아지는 삶을,
나는 믿어보기로 했다.
가게도 점차 자리 잡았다.
초기엔 직원 월급을 줄수 없어 직원을 두지 않고
이른 아침부터 새벽까지 일하며
몸이 부서질 듯했지만
누군가 그러더라.
“성실한 사람은 결국엔 빛을 본다.”
그 말처럼
우리의 가게는 점점 손님이 늘었고 직원들을 고용하고
드디어,
나는 아침부터 점심까지만 일하고
오후엔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손잡고 놀이터를 걷고,
미끄럼틀에 올라 웃는 아이를 보며
나는 깨달았다.
아,
이게 행복이구나.
내 손으로 만든 저녁밥을
아이에게 떠먹이고
깨끗하게 씻긴 아이의 머리를 말리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이 시간.
이 날들이,
지나고 보니
내가 살아온 날들 중 가장 평온하고,
가장 소중한 날들이었다.
이전에는 살아남기 위해 버텼다면,
이제는
사랑하기 위해, 웃기 위해, 아이를 위해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