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우리가 생각한 평범한 삶
남편은 나보다 여덟 살이 많다.
그만큼 삶을 먼저 겪어본 사람이었다.
웃으며 거절할 줄 알고, 때론 나를 위해 사람들과 맞서기도 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함께 살아가는 세월 속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맞춰가며 그렇게 만들어진 관계였다.
살다 보면 문득, 남편의 말투나 행동 속에서 내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그리고 나도 어느새 그 사람을 닮아가고 있었다.
서로를 조금씩 닮아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중년 부부가 되어 있었다.
가끔은 상대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괜한 말로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입을 닫고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주기도 한다. 말 대신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리고, 아이 이야기를 꺼내며 다시 웃음을 되찾는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조용히 나아간다.
어느 날 아이에게 물었다.
“넌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아이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평범하게 살고 싶어.”
“평범? 그게 제일 어렵던데…”
그러자 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엄마 아빠처럼 말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했다.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하자, 남편은 말없이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잘 살았네. 한 번도 부모처럼 살아야지 생각해본 적 없는데, 우리 아이가 그렇게 말해주니 참 좋다.”
“응. 상 받은 기분이야.”
그날, 우린 서로의 어깨를 조용히 토닥였다.
불혹의 나이가 넘어서야
이토록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구나 싶었다.
‘평범하다’는 말은 사람마다 다르게 들리겠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가장 어렵고, 가장 원하던 삶이었다.
치열하게 버티고, 견디고, 싸우며 지나온 시간 끝에
우리 가족은 지금, 그렇게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 평범한 하루는
함께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아이의 학교 이야기에 웃음을 짓고,
잠들기 전 서로의 하루를 조용히 들어주는 그런 시간들이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누군가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우리는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더 이상 누구처럼 살고 싶다거나,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의 평범함은 오랜 시간 쌓아 올린 믿음이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만들어 낸 평화였다.
어느 날 아이가 또 말하겠지.
“난 엄마 아빠처럼 살고 싶어.”
그때도 지금처럼, 마음 깊이 따뜻한 울림이 전해지기를.
우리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매일을 성실히 살아가는 평범한 가족으로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함께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