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에필로그_나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마음 한켠 오랫동안 돌덩이처럼 눌려 있던 감정들을 조심스레 꺼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니,
두서 없이 써 내려간 글에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쓰고 또 쓰면서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고,
그 과정 속에서 나의 잘못도 돌아보게 되었으며,
때로는 나 자신이 참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첫 결혼생활은 폭언으로 시작되어, 어느 순간 물건을 부수고, 결국엔 내 몸을 향한 폭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점점 의처증으로 번진 그의 집착 속에서, 나는 매일이 공포였고 상처였습니다. 그렇게 나는 그 사람에게 부서지고 찢긴 채로, 더는 맨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어, 결국 도망치듯 이혼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싸우기 싫어서 회피하고, 모든 걸 나 혼자 참으면 된다고 믿으며 지켜내려 했던 시간들. 그런 시간이 결국 다 부정당했던 날들.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했다며 자책했던 날들.
행복해지기 위해 다시 사랑을 시작했지만, 우리 둘만의 문제가 아닌, 이어진 사람으로 인해 생겨난 일들이 또 나를 흔들기도 했습니다.
나는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했고,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는 나약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으며 누군가는 ‘왜 그랬을까’, ‘참 어리석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혹은 ‘참 이기적이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글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쓴 것이 아닙니다.
한 겹 한 겹 살아온 삶의 껍질을 벗겨내며, 진짜 나를 마주한 고백이자, 내 안의 치유를 위한 기록이었습니다.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고,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으며, 결국 나는 내 그릇만큼 살며 다른 하나를 갖기 위해 또 다른 하나를 놓아주고, 그렇게 내 안의 행복을 천천히 채워가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며 살아간 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미움조차 희미해졌고,
결국 나는 나를 위해 그 감정들을 하나씩 지워내고 있습니다.
용서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아프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놓아주는 일임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혹시 지금 인생의 끝자락처럼 느껴지는 어둠 속에 서 있다면,
그 말 못 할 고통과 외로움이 내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는 중이에요.
누구보다 강한 사람입니다.
완벽하려고, 다른 사람과 같아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지워도 됩니다.
나는 남들과 다릅니다.
남들이 겪어보지 못한,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들을 이겨내며
지금 이 자리에 와 있으니까요.
나 역시 매일같이 울며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걸까’ 자책하며 살았습니다.
모든 게 다 내 탓 같았습니다.
나에게 모진 말을 뱉던 사람들도,
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끝없이 괴롭혔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던 순간도 수없이 지나갔지만,
결국 여기까지 살아내며 알게 되었습니다.
삶은 언제나 내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지만,
그 안에는 분명 소중한 나날들이 숨어 있습니다.
누군가의 며느리로,
누군가의 딸로,
그리고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로—
나는 매일,
조금씩 나를 다시 살아내고 있습니다.
상처도 있었고,
지울 수 없는 아픔도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결국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했습니다.
어쩌면 삶이란,
상처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품고도 웃을 수 있는 법을 배워가는 여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랑받고 싶어 했던 엄마.
엄마를 닮아, 나도 사랑을 받길 원했을지도요.
그 마음이 나라는 존재를 오히려 갉아먹은 듯합니다.
나를 먼저 사랑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몇 해 전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면,
예전엔 나에게 무거운 짐만 담아주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이제는 그 시절을 살아냈던 한 여자의 인생이 떠오릅니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사랑을 주는 방법이 서툴렀던 엄마의 마음이
이제서야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문득, 그립다고 느낍니다.
이제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만
조용히 마음 한켠에 담아두고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려 합니다.
지금은 숨 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각자 살아가는 세상도 다릅니다.
그러하기에,
나의 세상에서는 쉬어도 괜찮고, 넘어져도 괜찮고,
천천히 다시 걸어가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괜찮아요. 지금의 당신도,
충분히 아름다우니까요.
이제는,
다른 누구의 삶이 아닌
온전히 ‘나’로 살아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비워내야 할 마음은 비우고,
채워야 할 것들을 채우며,
조금씩, 그러나 단단히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