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게 없어도 지금이 좋다.
제주에 산 지 벌써 4년.
제주의 봄은 동백꽃에서 시작해 유채꽃으로 이어지며 조용히 봄을 알려준다.
시간을 잊고 지내던 나에게, 메밀꽃이 피고 감귤꽃 향이 코끝을 찌르면—곧 여름이 온다.
여름이면 휴가철 전에 바다로 나가 아이와 함께 조개껍데기를 줍고,
작은 생물을 찾아 채집 놀이를 한다.
물이 빠지는 시간, 사람이 없는 원담에 가서 작은 물고기를 잡고,
강아지와 함께 수영하며 그렇게 여름을 보낸다.
가을엔 다시 메밀꽃을 보고, 오름들을 오르며 사진으로 계절을 기록한다.
제주의 겨울은 서울의 겨울과는 다르다.
차갑고도 따뜻하고, 거칠면서도 고요하다.
서울의 겨울이 모든 것을 앗아간 듯 황량하다면,
가로수엔 앙상한 나뭇가지뿐이고, 회색 도시 위로 찬 바람만 지난다면—
제주의 겨울엔 서울의 봄처럼 초록 잎사귀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감귤나무에도, 밭둑에도, 작은 숲에도
초록은 숨지 않는다. 계절의 끝에서도 생명이 자란다.
그렇게 나는 제주의 사계절 속에서
조금씩, 다시 나를 되찾는다.
제주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