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아버지 그는 남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가.
자식에게 애정을 주지 못한 사람, 아니, 주지 않은 사람.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부모’의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에게 자주 맞았다.
세네살 아이의 작은 실수 하나에도 그는 벨트를 풀어 휘둘렀다.
그 공포는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는 분노인지 절망인지 모를 감정으로 아이들의 비명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소리를 그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끝내 알 수 없다.
정말로 혼내기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자신 안의 무언가를 퍼붓기 위한 행위였을까.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인 친할머니에게조차 무심했다. 전화 한 통 걸지 않았고, 장모인 외할머니에겐 노골적인 무시로 일관했다.
외할머니가 집에 오시는 날이면 어김없이 엄마와 싸움이 벌어졌다.
그의 직업은 무직이었다.
무엇도 하지 않았고, 무엇도 책임지지 않았다.
우리가 10대가 되었을 무렵, 잘 먹고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이 그에게는 불편했던 걸까.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빵이나 곶감 같은 것들을 몰래 숨기고 혼자 먹었다.
우리에겐 용돈 한 번 쥐여준 기억도 없다.
자식으로서 기대할 수 없는 사람.
그게, 나의 아버지였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와 긴 세월을 함께 살아냈다.
우리가 성인이 된 뒤 결국 이혼하셨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재산 분할을 한 아버지는 동생에게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고, 다시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법적으로는 아무 관계도 남지 않은, 그저 ‘동거인’일 뿐이었다.
엄마는 늘 말했다.
“너희 때문에 아빠랑 사는 거야.”
결혼식 날, 혼주석에 아버지가 없을까 봐.
혹시라도 우리가 그를 떠맡아야 할까 봐.
화가 날 때면 아침이든 밤이든 전화를 해서 “너희 아빠 좀 데려가라”며 고함을 치셨다.
몇 해 전, 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아버지 셨다. 전날 밤에 쓰러진 걸 모르고 아침에 발견을 해서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상태였다.
좌뇌는 이미 거의 손상이 되어 가망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 순간조차 그는 엄마의 생명보다 자신의 앞날을 걱정했다.
“나한테 돈 한푼 남기지 않았다.“라며
병원 복도에서, 의사의 설명 앞에서, 그는 줄곧 그 말을 반복했다.
그것이, 나의 아버지였다.
엄마의 장례식장에서도 그는 “다리가 아프다”며 우리를 따라다녔다.
“나 좀 봐달라”며 자식들을 붙잡았다.
부모를 잃은 자식들 앞에서도, 그는 여전히 자신만을 생각했다.
엄마의 유품을 정리할 때는 사진을 찢었다.
마치 엄마의 흔적을 서둘러 지워버리려는 사람처럼.
다 갖다 버리기 바쁘셨다.
슬픔조차 생략하고 싶은 듯한 모습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49일째 되던 날, 남매가 절에 모여 49재를 올렸다.
음식을 차리고, 절을 하며, 좋은 곳으로 가시길 기도했다.
그 시간에도 아버지는 삐딱하게 앉아 있었다. 하기 싫은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며 불쾌한 눈빛을 보내고, 자기 다리를 주무르기 바빴다. 이미 병원도 다녀온 후였다.
재가 끝나자 다시 그 말이 시작됐다.
“나한텐 한 푼도 안 남겼어.”
사실, 법적으로는 주지 않아도 되는 돈이었다.
엄마와는 이미 남남이기에.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법적으로, 그는 우리의 ‘아버지’였다.
그래서 엄마의 유산을 그의 전세자금과 생활비로 쓰기로 했다.
그제야 그는 더 이상 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자주 생각한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그는 어떤 남편이었고, 어떤 가장이었으며, 어떤 인간이었을까.
부족하고, 무심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
하지만 어쩌면, 그는 사랑받지 못한 아들이었기에
자식에게 사랑을 줄 방법이나 자신의 생존만 생각했던 사람. 오로지 생존만 . 그렇다고 일을 하며 생존을 하는게 아니라 엄마에게 붙어서 생존하는 그런 사람.
아버진 아버지의 생존만 생각하며 화풀이 대상으로
엄마와 우리 남매를 선택했다.
아버지는
“왜 전화 한 통 없냐”고 때때로 연락이 온다.
그럴 때 나는 말한다.
“아빠는 할머니에게 전화한 적 있어? 난 그런 모습 본 적이 없어서, 나도 그게 뭔지 몰라.”
일부러 그렇게 말한다.
살아 있는 동안이라도, 반성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식은 부모가 하는 걸 보고 배워”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욕을 하며 전화를 끊는다.
그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고, 여전히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제 다짐한다.
나는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그의 결핍이 내 삶의 상처로만 남지 않도록, 그 그림자를 내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도록.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고 관심을 갖고.
나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거다.
절대로. 그 상처가 얼마나 오래 가슴에 남는지를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