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딸도 아내도 아니였던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이렇게 불러보면 마음 한켠에 그리움과 아련함이 밀려온다.
엄마는 무능력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남편을 만나,
사랑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채 살았다.
그 사랑에 대한 갈망은 집착으로 변했고,
엄마는 자식을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우리를 옭아맸다.
“내가 고생했으니, 이제는 네가 보답할 차례다.”
나는 안다.
엄마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하고
어린 나이에 동생들을 업어 키우느라 학교도 못 갔던 어린 시절.
결혼해선 폭력과 폭언 속에서 견디고,
자식들 입히고 먹이기 위해 생계 전선에 뛰어드셨다는 걸.
그 고단한 삶을.
그리고 우리들은 엄마가 열심히 살아온 걸 보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았고,
사고 한 번 치지 않고,
그저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다.
엄마가 살아온 그 시절보다도 더 치열한 현재를.
엄마는 열심히 산 덕분에 노후만큼은 걱정 없으셨지만,
늘 ‘돈, 돈, 돈’ 하셨다.
자식들에게 키운 값이라도 받아내려는 듯,
마치 빚쟁이처럼 무거운 짐을 자꾸 우리 어깨 위에 얹으셨다.
그 말들이 나를 짓눌렀다.
그리고, 외로우셨던 걸까.
내가 엄마에게서 멀리 이사를 한 뒤
이모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을 핑계 삼아 곁에 붙들어 두려 하셨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뒤,
그 돈을 빌려간 이모들은 모른 척 등을 돌렸다.
참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토록 나에게 돈을 달라고 하시면서,
그 돈으로 결국은 이모들에게 빌려주었던 엄마.
이모들 역시 엄마에게 돈을 조금이라도 뜯어내기 위해
엄마의 비위를 맞추려 데리고 여기저기 바람 쐬러 다녔다.
엄마는 그게 행복이라 생각하셨을까?
그게 돈의 힘이라고 생각하셨을까?
아니면 이모들의 그런 모습이
당신을 아낀다고 생각했던 걸까?
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
갑자기 이모들이 나서더니 자신들이 엄마를 돌보겠다고 했다.
그 대신 그 대가로, 전문 간병인보다 훨씬 많은 돈을 요구했다. 마치 엄마를 볼모로 돈을 마저 다 뺏고 싶은 그런 마음들이 보였다.
돌봄이라는 이름 아래 값을 매기고,
자매라는 관계조차 거래처럼 느껴지던 그 순간들.
난 “이모들 고마워 그런데 엄마 돌보다가 힘들어서 병 나.. 그냥 간병인 구할께”라며 더 이상 이모들 말을 막아버렸다.
며칠 지나서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집에 있던,
내가 엄마 선물로 사드린 명품 가방을 달라고 했다.
참, 구질구질한 인생들 같았다.
돈 앞에서, 정조차 싸늘하게 식어가는 모습들이 씁쓸했다.
엄마는 그 상황을 보셨다면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토록 믿고 의지했던 동생들의 민낯을 마주했다면,
속상하셨을까, 실망하셨을까.
아니면, 그래도 괜찮다며
늘 그랬듯 본인 마음을 다독이셨을까.
신이 모두에게 있을 수 없어서
엄마를 만들었다고 한다.
어릴 적, 나를 돌봐주던 엄마는
진짜 신 같았다. 늘 나의 주변에서 나를 지켜주던
다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신.
하지만 내가 한 아이의 신이 되고 나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엄마가 얼마나 사랑에 결핍되어 있었는지를.
그 결핍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용을 당하며
외롭게 버티다가, 세상을 떠났는지를.
나에게 무거운 부담을 주고 늘 내가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게끔 만든 엄마.
엄마는 평생 누군가의 엄마였지만
단 한 번도, 누군가의 ‘딸’로 살아본 적은 없었다.
이기적인 남편에게 조차 사랑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엄마, 엄마, 엄마…
부르면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