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존재를 잊어야 하는 날
어버이날이 다가온다.
누군가는 꽃을 사고, 마음을 전할 날이라며 들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른 날로 다가오는 날이다.
홀로 남으신 아빠에게는 용돈을 보내야 하고,
혼자 지내시는 시어머님은 우리 집에 오신다.
1년에 한두 번 오시기에 오시는 날 만큼은
4박 5일 동안, 삼시 세끼를 정성껏 차려드린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주방으로 6시 출근해서 저녁 8시에 끝난다.
다른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식성 다르다는 것.
우리 아이는 흰쌀밥만 먹는다.
조금이라도 잡곡이 섞이면 입도 대지 않는다.
반면, 어머님은 흰쌀밥은 싫다며 꼭 잡곡밥을 드시는 분이다.
반찬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매콤한 걸 좋아하지만,
어머님은 조금이라도 맵거나 자극적이면 속이 쓰리고 소화가 안 된다고 하신다. 고기도 싫다 뭐도 싫다….
면종류는 쌀 아니면 메밀로만.
어머님의 최고의 음식은 건강 프로그램에 나오는 식품으로 요리한 것들.
어머님은 채식과 생선 위주 아들은 고기가 있어야 좋아한다.
하루에 6끼를 차리는 나의 주방은 바삐 돌아간다.
어버이날.
누군가는 마음을 전하는 날이라 하지만
나는, 나를 잃어가는 날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남편의 엄마이기에,
정성을 다해 식사를 준비한다.
입맛에 맞을 만한 반찬을 고민하고,
속이 편할 음식을 찾아서 만든다.
그 순간만큼은 “맛있다” 하시지만,
서울로 돌아가셔 선
“그냥 밥 먹고 왔다”며
슬쩍 마음에 안 드신다는 듯 말씀하신다.
보통은 부모님이 자식들 먹으라고
뭐라도 싸 오신다던데, 어머님도 싸 오시긴 하신다.
복지관에서 샘플로 주시는 것들.
혹은 유통기한 임박한 것들.
어머님은 오히려 우리 집에 있는 걸 챙겨가신다.
반찬, 과일, 심지어 아이 간식까지도
‘이거 맛있네’ 하시며 욕심을 내신다.
특별한 물건도 아닌 어디서나 살 수 있는 것들.
캐리어에 차곡차곡 넣어가신다.
그러면서도 내가 드린 정성과 마음은
가볍게 흘려버리신다.
내가 뭘 더 해드려야 마음에 드실까,
그런 생각이 자꾸만 나를 지치게 한다.
연세가 있으신 만큼 드시는 약도 많으시기에 빈속에 약 드시면 안 될 것 같아서 아침 8시, 점심 1시, 저녁 6시.
시간 맞춰 식사를 차려드린다. 6시 이후에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차렸다가 남편에게 6시 이후에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 라며 푸념 섞인 말을 엿들었다.
그래서 무조건 시간을 맞춰 식사를 차려드리고 한 시간 후 남편 식사를 또 준비한다.
혹시라도 내가 급히 외출할 일이 생기면
“어머님 국은 여기 있고요, 반찬은 여기에 있어요.”
미리 말씀드리고 나가지만,
어머님은 절대 손 하나 까딱 않으신다.
그리고 내가 돌아오면,
그제야 식탁 앞에 앉으신다.
서둘러 밥을 차리는 나를 지켜보다가,
음식이 앞에 놓이면
마치 그제야 배고팠다는 듯 허겁지겁 드신다.
그러기에 급한 외출임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게 된다.
내가 차려주는 밥이 ‘당연한’ 일이 되고
그 수고는 ‘별것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
애써도 돌아오는 건,
무심한 말 한마디와, 묵묵한 침묵뿐.
그런 행동들이, 때로는 나를 지치게 한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어머님은 밝게 웃으며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나와는 여전히 서먹하다.
그래서 어머님이 우리 집에 오시면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말을 아끼게 되고,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그날만큼은 우리 집이 내가 편하게 숨 쉴 공간이 아닌,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공간이 되어버린다.
이해하려 애써도,
그 무심한 손길 말 하나하나에
내 마음은 조금씩 구겨진다.
내 공간, 내 물건, 내 시간…
조금쯤은 나를 위해 남겨두고 싶을 뿐인데.
어머님이 오시면 모든 게 사라진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시어머니가 된다면
이렇게 행동하게 될까?
당연한 듯,
내가 해온 걸 대물림 하게 될까?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일상을 침범하고,
정성 위에 무심함을 덧칠하게 될까?
그래서 더 조심하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을 지치게 하는 어른이 되지 않도록.
애써 차린 밥상 위에
고마움이 아닌 부담을 얹지 않도록.
나는…
조금은 다르게 늙고 싶다.
내가 겪은 불편함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