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맨몸으로 다시…그리고 난 나쁜 엄마가 되었다
통장에 잔고는 0원
‘내가 너 날개 달아준 거지!! xx년 남자 생겼냐?’
남자? 웃음만 났다. 그째
퇴근은 7시 집현관을 열어야 하는 시간은 8시
어찌 바람을 피울 수 있는 건지.. 싸우기 싫어 난 회식조차 가질 않았다. 그 싸움은 나를 서서히 메말라 죽이고 있다는 걸 알기에 난 다 피했다.
내가 다시 취직을 한 게 왜 일을 나간 건지 기억이 안 나는 건지… 여태 가만히 쥐 죽은 듯 살다가 이혼하자고 하니 고작 생각이란 게 내가 남자가 생겼다고 의심하는 사람
그 사건이 터지기 며칠 전 밤늦게 전화가 왔길래 받으니 잘못 눌러진 거였다. ‘지영아 2 차가자 오빠가 잘해줄게 ‘ 이 말이 들리는 순간 손이 떨려왔다.
너란 인간은 어디까지 보여줄래?
새벽에 들어오길래 물으니 친구 와이프의 동생이라나?
눈뜬 채로 아침을 기다린 후 그 와이프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 아침부터 죄송한데 혹시 여동생 …. 어제 저희 남편이랑 만났나요?’
‘네? 동생 없어요’
일어난 남편이 뭐 하냐고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얼마나 내가 우스웠으면 그런 행동을 한 걸까?
그때 이후로 난 그 사람을 지웠다.
폭행 폭언 … 바람….. 노예처럼 살아온 나에게 해방을 주고 싶어서 이혼이란 말이 처음으로 내 입에서 나갔다.
그동안 일하며 번돈 다 주고 통장에 0만 남은 채 말이다.
난 오 갈 곳이 없어 친정으로 우선 왔다 몸싸움으로 인해 기운이 다 빠진 채로 집에 들어갔다
나의 엄마는 대략적 눈치로 알고 계신 듯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나의 결혼은 막을 내리고 있었다. 보름쯤 지나서 퇴근하니 친정집 앞에 나의 짐이 담긴 3박스가 있었고 문자로 ‘네가 나간 거니 아이는 못 볼 줄 알아라 ‘ 이렇게 연락이 왔다.
아이….. 내가 너무 힘들어도 아이를 보며 참고 너로 인해 늘 내가 감당하고 살아야 하는데…라며 결혼생활을 꾸역꾸역 살았는데….. 눈물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아이를 보고 싶다고 연락을 해도 무시하고 보여준다면서 만나기로 한 지하철역에서 다른 칸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입구에 서서 날 보며 일부러 지나가고 … 나의 아킬레스건이란 걸 알고 숨을 조여왔다.
이혼하기로 하고 법원에서 보자 해놓고 안 나타나고
신분증을 일부러 안 갖고 오고 법원 안 간다 하고 …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아이는 보지 못한 채…
그래 내가 그렇게 소리 지르고 싸우면 아이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내가 만약 참고 산다면 … 내가 죽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에 숨이 막혔다
합의이혼날
난 친권 양육권 재산분할 위자료 다 포기했다.
아이에게 오롯이 쓰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또 재판으로 그 사람 얼굴도 보기 싫었고
내가 가장 포인트인 ‘돈’을 포기하니 그 사람 역시 ‘양육비 안 줘도 된다.
그리고 그동안 네가 나에게 이체했던 돈도 안 준다 ‘
이게 그 사람이 원하는 거였다
’ 돈‘
자녀가 있기에 2번째 법원에서 만나는 날
그렇게 판사 앞에서 이혼이 수리되었다.
결혼을 하기 위해선 최소 1년이 필요했지만
이혼은 재판장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법원에서 내려가면서 “행복해라”한 마디 후 눈물을 흘리기에 난 바로 돌아서 버렸다. 늘 싸우면 울면서 빌고 하던 그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치가 떨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결혼생활을 되짚어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행복했던 기억을 찾고자 했다.
싸운 다음날 내 생일이라고 미역국 끓여 준일
매년 크리스마스엔 우편으로 카드 보내준 거
그리고 … 기억이 없다.
그 사람은 싸우고 나면 늘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사랑한다라고 말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소름 끼치게 느껴졌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그런 사람에게 아이를 키우게 했냐고…. 죽으나 사나 아이를 데리고 와야지…
그 사람은 ‘아들’에 대한 사랑은 대단했다 아무래도 시골 사람이라 아들이 최고다라는 고지식한 집안이었으며 5형제에서 아들은 나의 아이까지 세명이어서 아버님에게 재산을 더 물려받을까 하는 마음에 더 나에게 못준다 하는 걸 알고 있다. 난 무능력하며 기댈 곳 없는 엄마이기에 아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살게 하고 싶어서 아이를 포기하기로 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게 해 준다고 하더니 못 보게 만들고
아이에게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사람
‘네가 만나고 나면 아이가 이상하다 ‘
‘너 때문에 말을 안 듣는다 ‘등등 나의 마음을 후벼 파며
날 정신적으로 힘들게 했다.
끝내 만나지 말아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멀어졌다.
내가 살고자 난 나의 아이 가슴에 평생 남을 슬픈 기억에 새기고 말았다. 어떤 이유 어떤 핑계를 대도 난 나쁜 엄마고 그건 내가 죽는 날까지 죽어서도 아이에게 평생 속죄 하며 살아야 한다.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너에게 평생 잊지 못할 상처 줘서 …
한참 예쁠 시기에 돈버느랴 안아주지 못했고
싸우고 지쳐서 쓰담듬어 주지 못했으며
남편의 미움이 가득 차 있을때는 똑바로 바라봐주지 못했다.
난 그런 어른스럽지 못한 키만 큰 아이였다.
그런 내가 내가 죽겠다 싶어 아이를 놓고 나오고
남편을 안보니 숨이 쉬어지자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 눈물로 매일 매일 죄책감에 시달리며 괴로워 하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