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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수 Apr 27. 2023

기묘한 길상사 템플스테이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열두 해 전 봄, 21살의 나는 친구와 길상사에서 1박 2일 템플스테이를 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당시의 사진을 찾아봤다. 사진첩을 열어 과거의 나를 보니 너무 아름다웠다. 얼굴은 개나리처럼 생기가 넘치고 동공에는 총명이 가득하다. 눈동자를 넘어 꿈이 많았다는 것까지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은 잃어버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어느새 살이 처지고 주름이 생긴 현재의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다. 과거의 내게 이렇게 자라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물론 당시의 나는 외모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있었지만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외모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내 모습도 12 간지가 한 바퀴 더 돌고 돌이켜보면 중천에 떠있는 태양처럼 빛나 보일까.

 나는 개나리 같은 화사한 노란색 티를 입고 템플스테이에 갔다. 한 보살님께서는 나와 내 친구를 보고 진돗개 강아지 두 마리가 언덕을 올라오는 것 같다고 했다.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는 평소엔 소심하고 순수하지만 이따금 남자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친구였다. 

 입소 후 식사를 했다. 반찬들은 자주 먹던 자극적인 맛이 아닌 은은하고 깊은 맛이 났다. 밥은 쌀알 한 톨 한 톨 꿀을 발라놓은 것처럼 단맛이 났다. 하지만, 왜 인생 평탄한 길만 있는 게 아닐까. 매실 장아찌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잔반통이 없어 남김없이 식사를 해야 했기에 구역질을 하며 장아찌를 먹었다. 먹고 친구를 보니 친구는 눈시울이 빨갰다. 식사시간에는 말을 할 수 없었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저녁시간 스님의 가르침은 힘을 빼는 것이었다. 팔다리부터 힘을 뺏고 이마에 힘을 빼고 미간에 힘을 빼고 코에 힘을 빼고 입과 볼에 힘을 뺏다. 더 이상 뺄 힘이 없을 줄 알았는데 위와 간 등의 내장에도 힘을 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마음과 생각에도 힘을 뺏다. 이 과정에서 힘을 뺀 상태가 얼마나 편안한지 느꼈다. 집중력과 창의력이 극대화되고 생각이 트이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잠은 템플스테이 남자 인원 약 30명이 강당에서 요가매트를 깔고 수건 한 장을 덮고 잤다. 이 또한 내게는 수련이었다. 코골이 30중주를 들으며 밤을 지새웠다. 달팽이관과 내 안의 화 주머니에 힘을 빼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다음날 주지스님과 차담을 하였다. 원래는 템플스테이 담당 스님과 차담을 하는데 스님이 출장을 가셔서 특별한 경우라고 하였다. 주지스님은 여러 소중한 말씀을 하셨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부처님의 머리가 곱슬인 이유였다. 여러 가지 가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삭발 상태의 머리가 곱슬이 될 때까지 수행을 해서라고 한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갖은 뒤 화장실을 다녀오고 강당으로 들어서려는데 사잇문에 있는 작은 방에서 주지스님이 혼자 계셨고 내게 들어오라 하셨다. 주지스님은 달마도를 펼쳐 보이며 달마도의 눈을 보면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다. 가부좌를 할 때 검지와 엄지를 닿게 하는 수인을 펼치시며 스님께서 달마도의 눈을 보지 않을 때 내게 수인을 펼쳐보라 하셨다. 물론 물리적으로 노인의 손가락 따위야 혈기 왕성한 나는 두 손을 이용해 쉽게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주지스님이 달마도의 눈을 쳐다보며 다시 펼쳐보라 했을 때 나는 수인을 단 1mm도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반대로 주지스님이 내게 수인을 해보라 하셨다. 달마도를 보지 않았을 때 스님은 쉽게 수인을 펼쳤고, 달마도를 볼 때는 펼 치치 못하셨다(않으셨다). 쉬는 시간 후의 차담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구미호에 홀린 것처럼 방금 겪은 상황에 복기를 하는데 도저히 현실적으로 믿기지가 않았다. 달마도의 영험한 힘을 나는 믿을 수밖에 없었고 몇 년간 내 벽을 장식하였다.


 그로부터 12년 후, 짐 정리를 하는데 달마도 그림이 나왔다. 나는 12년 동안 특전사, 운동선수, 헬스 트레이너 등 힘센 사람을 만날 때마다 수인을 시켰고 모두 다 간단히 풀 수 있었다. 나는 최근 회사를 뛰쳐나왔고 12년 전 내가 꿈꾸던 삶을 살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영험한 힘을 다시 빌리기 위해 벽에 달마도를 붙여두었다. 


 여담으로 내 친구는 템플스테이에 온 J라는 여성에게 반했다.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나는 기묘한 일에 대해생각하느라 정신이 달나라로 간 사이에 J 씨를 쫓아가 번호를 물어봤다. J 씨는 내 친구에게 관심이 없었다. 순수하고 남자다웠던 내 친구는 J 씨에게 몇 년간 모든 계절마다 한 번씩 구애를 했다. 하지만, 몇 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J 씨는 끝끝내 친구를 거절했다.(정말 내 친구 이야기다.) 내 친구는 아직도 J 씨 얘기를 꺼내면 아파한다. 난 이 이야기로 자주 친구를 놀리지만 사실 친구의 용기가 부럽다. 주지스님이 달마도의 힘을 내게만 알려준 이유는 내 친구는 힘이 필요없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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