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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수 Apr 18. 2023

트와이스 콘서트 보러 갈레?

 지인들의 단체 채팅방에 트와이스 콘서트 티켓 나눔 글이 올라왔다. 나보다 먼저 가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절실했다. 콘서트를 갈 생각에 좋아하는 친구와 카페에서 샷 추가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처럼 설렌다고 하니 먼저 가고 싶다는 친구가 양보해 주었다. 먼저 가고 싶다는 친구에게 같이 가길 권유했지만, 완곡히 거절당했다. 누구와 갈지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했다. 트와이스 티켓 파워면 나와도 시간을 보낼 여성분이 있지 않을까? 착각하며…


 나는 이성에게 인기가 없는 스타일인 데다가 최근 헝가리에서 1년 6개월을 체류하여 이성 친구와의 연락이 사실상 전무했다. 그런데도 이성과 콘서트를 보고 싶단 생각에 깊은 고민에 응용까지 하니 A와 H가 떠올랐다.

 A는 중국 교환학생 당시 성당 청년회를 같이 하던 친구였다. 최근에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한국으로 바꾼 것을 본 것인지, 잘 지내냐는 안부인사를 받았었다. 연락을 해 메신저로 대화를 잘 이어 나가는 중 내가 콘서트날 시간이 있냐 물어본 순간, 채팅창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시간은 있다고 했지만 목적에 대해 물었고 콘서트에 대해 물어보니 남자친구가 있어 힘들다고 했다. 아뿔싸.

 H는 취업 교육 프로그램에서 만난 친구였는데 신기하게도 분기마다 연락이 오는 친구였다. 특히 내가 헝가리에 있던 시기에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받아서 가끔 타지생활의 즐거움과 비애를 나누기도 했다. 이번엔 트와이스를 좋아하냐고 먼저 물었고 예뻐서 좋다는 답변을 받았다. 콘서트 티켓을 핑계로 같이 가자 물었더니 매우 안타까워하며 오후에 토익 시험이 있다고 아쉽다는 대답을 받았다. 오후 토익 시험 시간이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물론 그날은 토익 시험이 없었다.

 이때 제사보다 젯밥에 집중하는 걸 멈췄어야 했는데, 안타까운 내 처지가 쓸데없는 승부욕을 발동시켜 버렸다.

 옛 연인 S에게 연락을 했다. 올해 최악의 선택이었다. 트와이스 얘기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한 번만 더 연락을 하면 전화번호를 바꿔버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에 관련된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차마 부끄러워서 내 일기에 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도 하였다. 최악의 선택에 대한 후회와 슬픈 결말에 며칠간 이불을 발로 차며 잠을 잘 못 잤다.


 고등학교 동창과 트와이스 콘서트에 갔다. 나는 남자 고등학교 출신이다.

 올림픽 공원의 콘서트장 주변은 디즈니랜드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공원을 덮고 있었다. 모두가 웃고있었다. 항상 인상을 쓰고 있어서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혀 있는 나도 그날만은 미간이 다림질을 한 듯 평탄했다.

 JYP사의 직원인 지인의 언니에게 현장에서 표를 받는데 33세의 겉과 속이 시커먼 남자 둘이서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것을 들키는 게 쑥스러워서 친구와의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먼저 티켓을 받았다.

 9명의 소녀가 최선을 다해 4시간 동안 무대를 꾸몄다. 4분 같은 4시간이었다. 몇 번이나 나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었다. 가녀린 몸으로 4시간을 지속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갖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을지 그 힘든 과정이 범인인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도끼의 힘을 가진 바늘처럼 가녀린 그녀들, 마부작침이란 말이 떠올랐다. 현재의 그녀들이 있기까지의 과정에서 미나는 마음이 아팠었는데 잘 이겨냈다. 정연은 지금 몸이 아픈데 잘 이겨내고 있다.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많은 것을 배웠다.

 9명 모두 훌륭하지만 내게 최고는 단연 사나였다. Cheer Up이란 곡의 샤샤샤를 직관한 순간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샤샤샤는 벚꽃 같았다. 견줄 것 없이 찬란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지나가버린다. 고개를 돌리면 개화하고 고개를 돌리면 만개하고 또 고개를 돌리면 이내 낙화한다. 촬영을 하려 했지만 찰나의 순간이 지나간 후에 녹화 버튼을 눌렀고 콘서트에 방문한 조세호와 곽준빈이 고개를 돌리는 것만 촬영할 수 있었다. 비록 영상은 없지만 그 찰나의 기억은 영원할 것이다.

 트와이스 타이틀곡 중에는 Alcohol Free란 곡이 있는데, 좋아하는 이와 함께하면 Alcohol이 없어도 미소가 나오고 밤을 새워도 졸리지 않고 취한다는 가사이다. 콘서트에 맥주를 들고 갔지만 마시지 않았는데도 마법에 걸린 것처럼 취해버렸다.

 콘서트는 끝이 났고 6개월 정도는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았다. 친구는 원래 위가 좋지 않아 공복 상태가 지속되면 통증이 생겨 큰일 나는데 신기하게도 배가 아프지 않다고 했다.

 이국종 의사가 대화의 희열에서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수 한 명이 수백 수천만명의 삶에 임팩트를 준다고 했다. 나도 삶의 의지가 떨어지면 영화나 음악, 책 등의 매체에 힘을 빌려 용기를 얻을 때가 있다. 이 콘서트를 통해 앞으로 1년 동안은 어떤 풍파가 와도 베테랑 선장처럼 웃으며 이겨낼 수 있는 큰 용기와 에너지를 얻었다.

 올해 최악의 선택을 통해 내 모든 여성 인맥을 잃었지만 최고의 선택이었던 공연을 통해 더 멋진 삶에 대한 의지를 얻었다. 몇 달 전 회사를 퇴사하고 내 길을 개척해 나가는 중이다. 이번 콘서트로 인해 지나간 과오에 얽매이지 않고 트와이스처럼 수백, 수천만 명에게 긍정적인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아주 멋진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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