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6살 공기업 총각

경제적 자윺

by 샤넬발망

저녁 11시, 늦은 시간이었다. 대구 동구의 혁신도시, 지방 이전 공공기관이 모여 있는 곳으로 저녁과 주말이 되면 아주 조용해지는 곳이다.

대구 시내 방향으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타려는데 경산쪽으로 나가는 콜이 떴다. 내심 고민했지만 경산 시내 중심가면 다시 대구로 들어오는 콜이 있을 것 같아 잡고 나갔다.


제법 술이 취했는데, 잘생긴 호남형은 안니지만 어른들이 참 좋아라할 만한 인상을 가졌다. 대구지역 탑티어 공기업에 재직 중인 36살 총각이었다. 서울에서 손님이 와서 부서 전체가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윗분들 다 택시를 태워드리고 본인이 가장 늦게 대리기사를 불러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한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공기업, 그것도 모든 대학졸업자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공기업에 재직 중인 8년차 직장인.


경산에서 태어나고 자라 대구 인근 대학에 입학하여 입학과 동시에 공기업 입사를 위해 전공 공부, 학점 관리, 적성 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얼굴에서부터 “나 모범생이요~~”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공기업 입사 할 정도의 실력이면 다른 대기업도 많이 합격 했을텐데 왜 공기업을 택했냐고 물었더니 “저 삼성전자는 떨어졌는데요.” 순간적으로 침묵이 흘렀다, 이 침묵을 어떻게 깨어야 할지 참 난감했다.


바로 그때 미혼이라는 말에 “왜 결혼을 안 하고 있나요? 혹시 비혼주의인가요?”

“아뇨, 그럴리가요, 엄청 결혼하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사람 마음 먹은데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좀 늦은 만큼 천천히 하려고요. 그리고 돈도 좀 더 모으고요~”


“돈은 많이 모으셨어요? 재테크를 열심히 해서 결혼자금 마련해야 할텐데...”

“4년 전에 사 놓은 비트코인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고 난 다음 엄청 올라서 이번에 좀 제법 짭짤하고 수익이 났습니다.”

나도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터라, 도대체 얼마를 벌었을까 내심 많이 궁금했다. 1억? 2억? 아니면 1천만 원, 2천만 원? 이 친구의 배짱을 모르니 정확하게 얘기할 수 없지만, 나름 당당하게 자랑하는 모습을 보니 꽤 크게 번 것 같았다.


역시나 모든 사람이 관심 있는 돈 얘기가 나오자 대화는 한창 무르익었다. 삼성전자 주식, 미국 배당주, 미국 ETF...등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재테크 상품에 다 투자하고 있는 고객이었다. 요즘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 한창 논쟁의 대상이 되는 국주와 미주(국내 주식과 미국 주식) 얘기에서부터 코인 얘기까지. 그런데 재테크 상품 중에 가장 널리 사용되고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다.

바로, 부동산이다. 대한민국에서 부동산 재테크는 빠질 수 없는 이야기, 그러나 젊은 고객님은 부동산 투자는 아직 하고 있지 않는데, 그 이유는 부동산의 경우 투자금 회수 절차가 느리고, 그만큼 투자금이 많이 때문에 투자 1순위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꼭 사야한다면 대구가 아니라 서울에 집을 장만하고 싶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경제가 집중되고 사람이 모이는 서울만 집값이 오를 뿐 나머지는 다 원금 회수도 못할 것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통 36살이라고 하더라도 결혼을 하지 않은 총각의 경우에는 재테크 보다는 즐기는 것에 큰 관심을 갖기 마련인데 이 고객은 유흥, 연애 보다 오히려 빨리 경제적 자유를 찾아 은퇴하고 싶다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가 오면 은퇴하고 세계 일주 하면서 노후를 즐기겠다는 꿈을 가진 친구인데 그 생각이 너무나 멋져 보였다.


그런데 목적지가 혼자사는 오피스텔이나 원룸이 아닌 누가봐도 부모님과 함께 사는 가정 주택이었다. 조심스럽게 혼자 독립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사냐고 물었더니 “기사님, 제가 방금 얘기했잖아요. 경제적 자유를 빨리 이루고 싶다고요, 하하. 부모님이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까지 최대한 등에 업혀 살아서 악착까지 돈 모으고 재테크 하려고요.”


경제적 자유, 누구나 꿈꾸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절박하게, 현실적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 친구는 처음 보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사귄지 2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