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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성공할 거예요.

조각 미남 30살 청년의 이야기

by 샤넬발망

토요일 아침 9시 대리앱을 켰다. 아침부터 무슨 대리를 부르냐고 하지만 아침 일찍 대리는 3가지가 있다.

첫째, 이건 뭐 익히 예상했던 것처럼 밤새 술을 먹은 경우다.

둘째, 술을 먹긴 먹고 친구집이나 모텔 또는 호텔에서 잠을 잤는데 아침에 너무 힘들다 보니 운전하기 싫은 경우다. 이 경우는 운전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거리가 꽤 멀다.

세 번째, 나도 이 경우 좀 놀라긴 했는데, 골프 치는 분들이 골프장 갈 때 직접 운전하기 싫어 대리기사를 부리는 것이다. 그래도 확률적으로는 첫 번째가 제일 많긴 하다.


선릉에서 장한평으로 가는 콜을 잡았다. 보통 콜을 잡으면 기사가 고객에서 먼저 전화를 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미안하다 기다려 달라. 그런데 이 손님은 먼저 전화가 왔다. "걸어오시나요? 천천히 걸어오셔도 됩니다." 사실 이런 손님이 제일 고맙다. 목소리로는 젊은 사람인데 출발지는 선릉역, 그렇다고 술을 취한 것 같지도 않았다. 걸으면서 이 분은 직업이 뭘까? 궁금했다. 일단 선릉역 주변은 기업들이 많으니 테헤란로에서 일하는 셀리리맨? 주변 친구나 아님 동료직에서 자고 일어났나? 그런데 출발지는 식당 앞이네. 그러던 찰나 도착을 했다. 차종은 젊은 직장인들이 좋아하는 bmw 미니..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며 차 문을 여는데.

완전 예상을 빗나갔다. 스포츠 모자를 쓰고, 캐주얼한 점퍼에 운동화를 신은 젊은 조각 미남 청년이었다.


차를 타면 어떻게 대화를 걸어야 하나 차 안을 살펴보곤 한다, 차가 깨끗하면 엄청 좋은 향이 난다던가, 차 키로수가 많으면 차 연식이 오래되었다. 등등 어떻게든 대화의 물꼬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편인데. 이 조각 미남 청년은 의외로 쉬었다. 그가 먼저 나에게 반가운 척을 했기 때문이다.


고객 : 혹시 고향이 경상도분인가요? 억양이 우리 쪽 고향분 같은데..

나 : 티나 나나요? 전 사투리 안 쓴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서울말 하려고 노력하는데.

고객 : 하하, 완전 티나요? 고향이 부산 대구?

나 : 대구입니다.

고객 : 아.. 전 창원이에요. 고등학교까지 창원에 있다 대학을 서울로 왔어요.

이렇게 대화가 술술 풀리면 너무 마음이 홀가분하다. 그리고 이분은 어떤 인생을 살아가는지 그 궁금증이 커진다.


30살, 조각 미남 청년이다. 일 끝내고 가까운 지인들이랑 딱 소주 4잔을 먹었다고 한다. 대리를 부를까 아님 택시를 탈까 하다가 대리 비용이 택시비 보다 더 싸길래 대리를 불렀단다. 다시금 그 조각 미남 청년을 쳐다봤다. 외모는 화려하지만, 그만큼 대리를 많이 부르지 않았다는 것은 술을 자주 먹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소주 4잔이면 자칫 음주운전의 유혹이 슬금슬금 올라올 주량인데 단호하게 택시를 타거나 대리를 부르거나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바르게 자란 친구라는 것이다.


중학생 영어강사이고 자신의 학원을 차리기 위해 투잡으로 야간에는 발레 파킹 알바를 한다고 한다. 일 끝나고 아는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얼굴도 잘 생겼자만, 참 열심히 사는 친구구나 다시 한번 쳐다볼 만큼 이 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재혼 가정에서 자라 배다른 여동생을 아끼는 마음, 고향에서 식당 하시는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 꼭 성공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는 그 마음. 요즘 참 보기 드문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속내를 듣게 되면 나도 자연스레 내 마음을 털어놓곤 한다. 나의 버킷리스트를 위해 투잡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대화를 나눈 다는 것,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그 옆을 지키는 어머님에 대한 안타까움은 나와 끈이 맞닿아 있었다.


청년과의 대화 중에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성공이었다. 한 달에 250만 원 저축을 한다고 한다. 중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저녁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발레 아르바이트비를 벌어서 차곡차곡 영어 학원을 차리기 위해 돈을 모은다고 한다. 자기를 고용한 발레 사장님이 발렛만으로 상가와 아파트를 샀다는 얘기를 하면서 자기도 발렛이 그렇게 돈 많이 버는 줄 몰랐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발렛 사장님에게 일 배워서 다른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라고 물었다.


"아니요. 전 제 이름으로 된 학원을 차려 성공할 거예요. 학원은 동탄에 차릴 건데 학원 인테리어와 운영방침도 매일매일 생각하고 정리하고 있어요" 내가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아 매우 부끄러웠다. 본인만의 목표를 갖고 투잡을 하며 한 달에 250만 원이나 저축을 하는 친구에게 다른 일은 어떠냐고 물었던 나 자신이 싫어졌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설날이 무척이나 기다려진단다. 간혹, 한 번씩 어머니랑 통화하면 울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성공하기 전에는 고향으로 내려갈 수 없단다. 힘들게 서울 유학까지 보내주신 부모님의 기대를 저 버리기가 싫단다. 그러면서, 이렇게 서울에 살다 보면 아머니 볼일이 거의 없을 것 같아 빨리 성공해서 모시고 오고 싶다고 한다. 순간 나도 모르고 눈물이 났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몸과 마음이 많이 상한 어머니가 갑자기 생각났기 때문이다.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말을 선배들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때로는 짜증 내고 때로는 화풀이 대상으로 삼기도 하고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상처 주는 말을 자주 하기도 했고, 30살 조각 미남 청년을 보면서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 너무 부끄러웠다.


30살 짧은 인생에서 후회되는 게 뭐냐고 물었다.

"문과 간 것이요. 문과를 나오면 취업이 너무 어려워요. 다시 돌아가면 공대나 기술을 배울 거 같아요." 문송합니다 라는 말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익히 모두 고개 끄덕이는 것이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물론 나도 문과 출신이지만, 기업에서 문과를 활용하기가 참 애매할 것 같기도 하다. 과거는 취업에서 은행, 대기업의 인사, 재무, 영업은 문과 출신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은행도 AI 전문가 출신을 우대하고, 인사 및 재무 파트는 공대 출신을 뽑아 현장에서 2~3년 경험하다 인사 재무로 이동시키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고 한다. 드라마 미생의 한석율이 항상 했던 말 "현장을 알아야 한다" 이 말이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 된 것이다.


천천히 오라는 전화를 먼저 주고, 자기의 꿈을 위해 조금씩 실천해 나가는 조각 미남 청년...

극심한 취업난에 저조한 출산율, 좌우 이념 대립으로 인해 나라가 두쪽으로 갈아지고 있는 대한민국을 모두들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난 난 우리나라의 저력이 바로 이런 젊은이들이라고 생각한다. 30살 조각 미남 쳥년 그의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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