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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년의 즐거움

한 달에 한번 만나는 고등학교 동기 모임.

by 샤넬발망

2025. 01. 15 21:40


8시에 나와 추위를 피해 지하철 역사 안에서 콜을 기다렸다. 월요일이라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그것도 월요일 술을 마시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비즈니스 차원이라 해도 클라이언트도 월요일은 쉬어야지. 한 1시간을 기다렸을까? 스마트폰 스크린을 연속적으로 터치하며 아무 콜이나 받아야 생각했던 찰나, 콜이 잡았다. 아... 수신범위 설정을 3km 해 놓은 것을 깜빡했다.


지금 거리에서 2.8km 떨어진 곳. 갈까 말까 10초 정도 고민하다. 내가 취소를 해 버리면 다음 콜 받는 것에 페널티가 있을 듯하여 일단 뛰기 시작했다. 숨 차 올랐다. 취소할까 고민하다 일단 고객에서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얘기했더니, 기다리겠단다. 사실 이런 손님 참 고맙다. 뛰던 발검을 멈추고 잠시 걸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2.8km가 너무 먼 것 아닌가? 일단 가까운 곳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콜비 1만 400만 원에 버스요금 1500원.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그런 느낌? 그래도 일단 가기로 했다. 2 정거장을 지나쳐 버스에서 내려 800미터를 다시 뛰었다. 도착했을 때 "안 뛰어도 되는데?" 라며 웃으며 말해주는 50대 초반의 중년 고객님.


스타렉스 차종에 2만 킬로밖에 타지 않은 새 차. 누가 봐도 제조업 장사하는 사장님이 틀림없다.

무슨 대화를 이끌어야 하나 고민 끝에 "월요일인데 술을 드셨어요?라고 물었다.

돌아오는 답변은 술 먹는데 요일 정하고 먹어요? 그냥 기분 좋으면 한잔 하는 거고, 기분 나쁘면 나쁘다고 한잔 하는 거지요. 허허..


우문현답이다. 술이란 게 요일 정하고 먹지는 않지... 내가 40대 중반인데 50대의 삶은 어떤지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외롭단다. 타지에서 대학 다니는 딸, 고등학생인 아들.. 집에서 반겨주는 사람은 키우는 애완견뿐이란다. 사모님이 있지 않느냐 물었더니.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결혼 안 하셨죠? 허허..라고 묻는데 나도

모르게 그냥 같이 "네네 그 마음 알죠"라고 답했다. 사실 난 그렇지 않은데...


요즘 뭐가 즐거워요?라는 아주 단편적이고 짧은 질문에 사장님의 답변은 고등학교 동기 모임이라고 한다.

한 달에 한번 셋째 주 목요일 만나는 7명의 고등학교 동기들. 이들이 유일한 즐거움이란다. 분기가 아니라 매달이요? 매월 만나도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해도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단다. 그리고선 12월에는 따듯한 베트남으로 4박 5일 단체 관광도 갔다 왔단다. 남자들끼리만의 동남아 여행, 웃으며 좋으셨겠네요.라고 물었더니 손을 저으며 그런 여행 아니야라고 손사례를 친다. 베트남 호찌민 도시가 참 매력적이더만 관광할 때도 많고, 술만 먹었어 맨날...


이번에는 고객이 나에게 묻는다. 자녀가 있어요? 네, 5학년 아들 있습니다.

어이고 얼마 안 남았구먼. 네? 얼마 안 남았다니요.?

나처럼 외로워질 때가 곧 다가온다는 말이야. 애들이 중학생이 되면 부모랑 같이 놀려고 하지 않아. 그럼 그때부터 외로워지고 친구들이 하나하나씩 모인단 말이야. 의지할 사람들은 이제 애들 다 키운 친구들 밖에 없어. 젊을 때는 그렇게 아등바등 산다고, 애들이 등에 업고 여행 다닌다고 친구들과 보지도 못했는데 애들 다 크고 나니 이제야 모이는 거야. 기사님도 이제 그럴 시기가 얼마 안 남았어..


그제야 분기가 아니라 한 달에 한번 모이는 이유를 알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고등학교 친한 동기들을 본지가 꽤 오래된 것 같다. 사실 연락도 자주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대학은 달랐어도 매일 모여 같이 당구치고 pc방 갔던 친구들이 어느덧 군대를 가고 취업 준비를 하고, 이때까지는 그래도 가끔 보기는 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으면서도 연락이 뚝 끊어졌다. 매년 명절 때마다 안부 전화를 하던 혜선(남자임)이라는 친구가 갑자기 고마워졌다. 난 챙기지도 못했는데 그래도 그 친구는 나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목적지 도착 할 때쯤 24시간 무인 아이스크림 앞에서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뭘 사 오는가 봤더니 브라보콘을 여러 개 사 오는 것이 아닌가? 와이프가 먹고 싶다고 사 갖고 들어오래. 나에게도 하나 건네주신다.


집에서 기다리는 것은 애완용 개 밖에 없다고 했지만, 실상은 아내가 몹시 기다렸지 않나 싶다.

그게 단지 브라보콘 아이스크림 때문만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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