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홍수
콜을 잡고 보니 출발지가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보통 음식점 이름이나 빌딩 이름같이 명확하게 뜨는데 출발지도 명확하지 않고 도착지도 명확하지 않은 뭔가 찝찝한 콜이다. 일단 취소할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해서 전화를 걸었더니 여성 고객이었다. 어디로 오라고 말은 하는데 사실 정확하지 않아 찾는데 좀 어려움을 겪었다. 어느 부동산에서 오른쪽을 끼고돌아 20미터를 내려오면 시멘트 가게가 있는데 거기 오른쪽에 바로 차가 있어요. 이거 서울 시내에서 김 서방 찾기도 아니고, 참 난감함 상황이었다. 다시금 전화를 하니, 본인은 대리를 부른 사람이고 탑승자는 따로 있다면서 개인 연락처를 알려줬다. 그래도 이 정도면 감사할 뿐이다. 전화를 걸어 고객이 어디인지 최소한 확인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전화를 걸었더니 그제야 명확하게 탑승 고객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확하게 어느 순댓국집 앞이라고 얘기했으면 헤매지 않았을 텐데 괜히 시간과 체력만 낭비한 터라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고객이 있는 위치에 도착 후 출발을 하려는데 이번에는 목적지가 정확하지 않다. 고객에게 최종목적지를 물으니 좁은 골 목안이라 정확하지 않는데, 남산 000 아파트로 가 주세요. 그 이후부터는 제가 설명 드릴게요. 도착과 출발이 이리도 순조롭지 않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처음 차를 출발하면 우선 분위기부터 살핀다.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그냥 쉬고 싶은 사람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어디선가 계속 보내는 카톡울림소리, 그리고 전화 통화, 내용만 들어봐도 딱 공인중개사 하시는 중년 여성분이시다.
나도 나름 법학을 공부했기에 공인중개사 시험의 한 과목인 민법의 내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평소 부동산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던 터라, 자연스럽게 "민법 재밌죠?" 라고 말을 건넸다. 갑자기 어디로 카톡을 보내던 고객이 나를 쳐다보며 "민법을 아세요?" 라며 묻는다.
법학을 전공했다고 하니, 너무나 반가워하며 공인중개사 시험공부 때 민법이 제일 힘들었지만 제일 재미있게 공부한 과목이라며 같은 학문을 공부한 동지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법학전공자라면 학부 1학년 처음 들어가면 배우는 과목이 민법 총칙이다. 개인 간의 법률관계 기초를 다루는 법인데 개인 간의 부동산 계약을 다루는 공인중개사 시험에서 가장 중요하고 비중 있는 과목 중 하나다.
자연스럽게 부동산 시장으로 주제가 넘어갔다. 특히, 어느 지방도시도 마찬가지겠지만 대구의 부동산 경기는 최악의 중에 최악 바닥이라는 것이다. 주변 공인중개사 중에 이미 폐업신청하고 놀고 있는 자격증이 수두룩하다면서 자기는 근근히 버틴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인중개업 뿐만 아니라 여로 모임에 어쩔 수 나가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인맥을 쌓으며 물건을 확보하고 중개를 해야 겨우 가게 월세 유지하고 운영비도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분들은 매일 부동산 정보를 취득하고 취급하기에 일반인보다 더 부동산 투자를 잘 하지 않을까? 일반인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매일 상가나 아파트를 매매하는데 가격 정보를 빠르게 알 수 있고 누구보다 투자의 흐름을 알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부동산 투자로 돈을 많이 벌었는지 여쭤봤다. 사실, 차 종류(대형 세단)나 옷차림을 봤을 때는 상당히 부유해 보였기 때문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것 아시죠? 너무 많은 정보를 아니깐 너무 많은 생각을 해요. 그래서 과감한 투자를 못해요. 그러니 돈을 벌 수 있나요 뭐.."
대답을 듣고 보니 머리가 띵했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투자는 과감해야 한다. 그런데 여러 가지 리스크를 알고 정보를 알게 되면 오히려 과감해야 할 때 주춤 할 수가 있다.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모름지기 부동산과 같은 투자는 언제 항시 리스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짧은 고민과 과감한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도박에서도 마찬가지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가 돈을 따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이걸 보통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도 솔직히 놀랄 때가 있어요. 아니 저 물건이 그렇게 좋은가? 그 옆 동네에 장례식장이 들어선다는데 저런 리스크도 좀 봐야하지 않나? 이렇게 고민하면서 투자를 망설였던 물건인데 어떤 고객은 딱 한번 둘러보더니 바로 가계약 하더라고, 우리야 좋지 중개수수료 벌었으니깐..근데 귀신같이 그 물건이 1년 뒤에 크게 뛰더라고..그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야. 근데 그때 계약금 쏜 친구들은 부동산의 "부"자도 모르는 초보였어."
부동산 사장님이 어찌나 흥분했는데 말하면서 튄 침이 내 앞까지 튀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고객이 상가건물을 가르키며 "이 건물 봐, 바로 앞에 지하철 있고 뒤에 바로 남산(대구)이 있고 바로 옆에 초등학교야. 이거 투자한지 10년째인데 하나도 안 올랐어..에휴.."
때로는 어떤 선택을 할 때 신중하게 고민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신중함이 시기를 놓치고 오히려 단순하게 심플하게 생각하는 것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결혼도 마찬가지, 연애도 마찬가지. 최근 친한 후배가 결혼을 앞두고 이 결혼이 맞는지, 이 친구랑 결혼하면 행복할 수 있을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며 상담을 해 온 적 있다. 부동산 중개 사장남과의 대화 속에서 갑자기 이 친구가 생각났다.
이것저것 따지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과하면 쓸데없는 걱정, 전혀 할 필요 없는 걱정을 하게 되고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 후배를 만나기 전에 이 중개소 사장님을 먼저 만났다면 더 훌륭한 조언을 할 수 있었는데 조금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