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에 사는 디펜더 소유주
보통 대리 콜이 잡히면 대리기사가 먼저 전화를 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가 대리기사의 도착시간이 늦어지면 그제서야 고객이 전화를 해서 위치를 묻는 것이 거의 일반적이다. 그런데, 간혹 고객이 먼저 메세지를 보내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대리기사는 마음이 느긋하다. 일단 대리콜을 불렀다가 취소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상당히 매너가 좋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호텔 앞에 주차하고 있어요. 디펜더 차량 0000번 입니다" 라는 문자에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사실 콜 잡은 곳에서 고객이 있는 위치까지는 1.5km 빨리 뛴다고 해도 족히 20분은 걸릴터..그래도 먼저 문자를 주신 고객을 위해 열심히 달렸다.
출발지는 호텔이라고 되어 있으나 지하는 고급 유흥주점이었다. 아...늦게까지 술 드신 손님이겠구나 생각하고 디펜더 차량과 번호판을 확인하고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는데, 진한 향수냄새가 차안에 가득했다. 대리기사일을 하고 난 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여성 고객이셨다.
지하 1층에는 고급 유흥주점, 고객은 젊은 여성분, 그것도 곱게 화장을 하셨는데 누가봐도 유흥업계에 종사하는 여성임이 틀림 없다.
추운 날씨에 한참을 뛰어 도착한 탓에 따뜻한 공기를 흡입하고 나니 자꾸 기침이 나왔다. 이런 경우 고객에게 매우 실례가 되는 것이기에
부드럽게 "빨리 뛰어왔더니 숨이 차서 그런데, 독감이 아니니 너무 신경쓰지 마십시오. 죄송합니다" 라고 했더니 "네" 짧게 대답한 후 아무말이 없다. 이런 경우가 참 안타깝다. 이제껏 모셨던 고객과 달리 궁금한 것도 많았고 어떻게던 대화를 이어 나가고 싶었다.
"무슨 일 하세요?" 라고 묻기에는 너무 분위기가 무겁고, 그렇다고 "술 많이 드셨어요?" 라고 묻기에는 그 표정이 너무 힘들어 보여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침묵속에 차는 출발하여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다. 딱히 뭔가 술을 많은 먹은 것 같지 않았다. 차 스피커에서 흘리나오는 노래가 참 슬픈노래들 뿐이더라. 팝송이기에 정확히 가사는 모르겠지만, 음 자체가 차분하면서도 뭔가 애틋한 사랑의 이별 노래 같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음악에 취해 전방을 주시하지 못해 급 브레이크를 밟게 되었다. 그녀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차분하면서도 냉정한 목소리로 "눈길이 미끄러우니 안전거리 확보 부탁드려요" 어떻게 보면 참 맞는 말인데, 말에도 사람의 감정이 있지 않은가? 뭔가 좀 섭섭함이 느꼈졌다. '니가 하는 운전때문에 내가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음악 감상에 방해가 되었으니 제발 똑바로 운전해라' 이런 느낌?
"죄송합니다. 차가 너무 좋으니깐 앞으로 쭉쭉 가려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눔아, 천천히 가자" 진심 미안한 마음과 함께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 던진 농담인데, 무엇이 빵 터졌을까.. 옆에 앉은 고객이 그냥 크게 웃기 시작한다. 원래 웃음이 많은 분이지 않나 조심스레 짐작한데, 그리 웃긴이야기도 아닌데..
이 웃음 덕분에 뭔가 분위기가 좋아졌다. "동물이랑 의사소통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차랑 대화가 되시나 봐요? 하하하하" 여성의 호탕한 웃음에 나도 모르게 용기가 생겼다. 마음속으로 어떤 질문을 던질까 고민 했던 것들을 다 던지기 시작했다.
"술을 많이 안드셨네요?" "네, 많이 안먹었어요. 그리고 전 원래 잘 많이 안먹는 편이에요"
"근데 차가 정말 묵직하게 잘 나가네요. 근데 여성분이 운전하기에는 좀 힘들지 않나요? 사각지대가 많은 것 같은데.."
"어머머, 대기기사님 저 김여사 아니에요. 운전 엄청 잘해요~~~호호"
이런 대화가 오고 가는 분위기 속에서 무슨일 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런 질문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녀도 알고 나도 알고 뻔히 하는 일을 아는데 묻는 것이 실례가 될 뿐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끔 그녀가 묻는다.
"대리기사님, 전업으로 하시는 분 아니시죠?"
"어...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티가 좀 나나요?"
"사실 그렇긴 한데, 뭐가 다르죠? 원래는 무슨일 할거 같나요?"
"그냥 느낌이요. 얼굴에 나 대리기사가 전업이다 이런 느낌이 없어서 얘기한 것 뿐이에요."
순간 좀 당황스러웠다. 대리기사들 중에서 투잡으로 하시는분들도 엄청 많은데, 실제 투잡으로 하는 분들이 더 많을 수도 있는데 얼굴을 보고 투잡인지 전입인지 구분하는게 그냥 거짓말 같았다. 그렇다고 친구도 아닌데 거짓말 하지 말고 뭐냐고 따져 묻기도 그렇고...
어느덧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네비는 큰 길에서 조그만한 좁은 골목으로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원룸이 많은 전형적인 원룸촌 이었다. 어느 원룸 건물앞에 다다르자 파킹할 곳을 정해준다. 솔직히 비좁은 골목에다 원룸 건물 이런 곳에 주차할 곳이 있을까 내심 걱정을 많이했는데 생각보다 주차 공간이 넓었고 수월하게 주차를 했다.
차에서 내리고 인사를 주고 받으며 걸어 나오는데, 불쑥 선입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원룸촌에 들어 올 때 주차공간이 있을까 미리 주차공간이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졌듯 유흥주점에서 외제차를 몰고 진한 화장에 진한 향수를 뿌렸던 그녀, 그녀를 유흥업소 종사자라고 생각한것도 나의 선입견이 아니였을까? 괜히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무슨일을 하는지 묻지를 못했을까? 나의 선입견 때문 아닌가? 유흥주점 종사자가 아니라 호텔에 식사를 하러 왔다 와인 한잔 마실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녀가 나를 전업 대리기사가 아닐 것이라고 선입견을 가졌듯, 나도 그녀를 유흥업소 종사자라고 선입견을 가진 것이다.
이러한 선입견에 사로 잡혀 무슨일 하는지 물어보지 못한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