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진다는 증거

21화. 채민서 — 다시 연결할 수 있는 건강한 관계

by 담윤



채민서는

내 삶에서 사라진 적이 없는 사람이다.


자주 보지 못한 시기는 있었고,

연락이 뜸했던 때도 있었지만

끊어진 적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끊을 필요가 없던 관계였다.



채민서와의 관계는

언제나 현재형이었다.


오래 못 봤어도

다시 만나면

중간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땐 왜 그랬는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복기하지 않아도 됐다.


지금의 나로

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이 관계의 가장 큰 특징은

속도의 일치였다.


말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감정이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았다.


서로의 일상에

과하게 개입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떨어져 있지도 않았다.


필요할 때는 닿고,

필요 없을 때는 멀어지는

자연스러운 거리.


이 거리감이

나를 편하게 만들었다.



채민서와 있으면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


왜 요즘 이런 상태인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논리로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은 이 정도만 할 수 있어.”

이 한 문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이건 이해라기보다

존중에 가깝다.



나는 예전에

이런 관계를 당연하게 여겼다.


갈등도 없고,

드라마도 없고,

특별한 사건도 없으니까.


하지만 회복 이후에야

이 관계의 진짜 가치를 알게 됐다.


채민서는

나를 끌어올리지도,

시험하지도,

소모시키지도 않았다.


그 대신

회복을 방해하지 않았다.


이건 생각보다 드문 일이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조언을 남발하지도 않고

감정을 대신 해석하지도 않는다.


필요할 때만

자기 자리에서

한 발짝 다가온다.


그래서 이 관계는

유지에 에너지가 거의 들지 않는다.



나는 이제 안다.


다시 연결할 수 있는 관계란

끊어졌다가 이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애초에 끊어지지 않았던 관계다.


시간이 흘러도

형태만 달라질 뿐

본질은 그대로 남아 있는 관계.


채민서는

그런 사람이다.



이 관계에서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는다.


불안해지지도,

과하게 반응하지도,

스스로를 증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


이 안정감은

새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오래 유지되어 온 것이다.



채민서는

나를 바꾸지 않았다.


다만

내가 바뀌어도

그걸 문제 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관계를

미래로 가져갈 수 있다고 느낀다.


노력해서가 아니라

이미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런 관계가

회복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관계로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그리고

그 상태에서도

곁에 남아 있는 사람.


채민서는

그 증거 같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