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진다는 증거

22화. 브레이크 걸린 시절의 느림

by 담윤




그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드는 말은 이것이다.


나는 인간 바닥을 찍고 있었다.


과장이 아니다.

감정적으로 힘들었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우울했다거나 예민했다는 표현으로는 닿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사람으로서의 기능이 바닥까지 내려간 상태였다.



토피라메이트를 복용하던 시기의 나는

생각이 없어진 게 아니었다.

생각은 분명히 있었고,

다만 세상보다 늘 늦게 도착했다.


사람들이 웃는 이유를

웃음이 끝난 뒤에 이해했고,

말의 진짜 의미를

대화가 넘어간 뒤에야 파악했다.


그 결과

나는 항상 한 박자 뒤에 있었다.


그 한 박자는

생각보다 치명적이었다.



느림은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관계 안에서

나는 점점 자리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대화에 끼어들지 못했고,

흐름을 놓쳤고,

이미 지나간 타이밍 앞에서

입을 닫았다.


말을 안 한 게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위치를 잃어갔다.



그때의 나는

자주 웃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참여하고 있지 않았다.


존재는 있었지만

역할은 없었다.


누군가 나를 밀어낸 적은 없었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대화의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그게

내가 느낀 바닥이었다.



이 상태가 가장 무서웠던 이유는

아픔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으로서의 무게가

계속 가벼워지는 느낌 때문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내가

아무 말도 안 해도 되는 사람이 되어가고,

반응이 느린 내가

굳이 기다릴 필요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이건 감정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기능 저하였다.



나는 그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모든 원인을 나에게 돌렸다.


내가 눈치가 없어서 그런가.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인가.

내가 관계를 잘 못하는 건가.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건 성격이 아니었고,

태도도 아니었고,

의지도 아니었다.


속도의 문제였고,

전압의 문제였고,

약물로 인한 인지 처리 제한이었다.



토피라메이트 시절의 느림은

단어를 잊게 만들었고,

문장을 끊어 먹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맥락을 실시간으로 따라가지 못하게 했다.


맥락을 놓치면

사람은 곧

관계에서도 밀린다.


그 밀림이 반복되면

사람은 스스로를

낮은 위치에 놓게 된다.


나는 그 자리에

너무 오래 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느림은

나를 바닥으로 끌고 갔지만,

동시에

완전 붕괴를 막는 감속 장치이기도 했다.


빨리 반응하지 못했기에

더 큰 충돌을 피했고,

빠르게 맞추지 못했기에

아예 나를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을 실패로 부르지 않는다.


그건 추락이 아니라

낙하를 멈춘 지점이었다.


더 내려가면

회복이 불가능했을 자리에서

나는 멈춰 있었다.


사람으로서의 체면은 바닥이었지만

사람으로서의 핵심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잘 버틴 게 아니다.


버틸 수밖에 없었고,

그 방식이 느림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느림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라는 것도 안다.


바닥은

끝이 아니었다.


그건

다시 숨을 들이마시기 시작한

가장 낮은 지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