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감정과 생각이 동시에 작동할 때의 체감
예전의 나는
감정이 오면 생각이 멈췄고,
생각을 하면 감정이 밀려났다.
둘이 동시에 켜지는 순간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늘 한쪽만 작동했다.
과열되거나, 차단되거나.
⸻
회복이 진행되면서
가장 낯설었던 변화는
감정과 생각이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는 감각이었다.
감정이 올라오는데
사고가 꺼지지 않는다.
생각을 하는데
감정이 배제되지 않는다.
둘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나란히 놓인다.
⸻
이 체감은
격렬하지 않다.
오히려 조용하다.
서운함이 올라와도
그 서운함을 관찰할 여지가 있고,
불안이 생겨도
불안의 원인을 추적할 시간이 생긴다.
감정은
결론이 아니라
데이터가 된다.
⸻
가장 분명하게 느껴진 건
멈출 수 있다는 감각이었다.
이전에는
감정이 올라오면
곧바로 반응으로 이어졌다.
말을 하거나,
피하거나,
설명하거나.
지금은
그 사이에
작은 간격이 있다.
그 간격 덕분에
나는 선택할 수 있게 됐다.
⸻
예를 들면 이런 순간들이다.
기분이 상하는 말을 들었을 때
즉시 방어하지 않는다.
감정은 분명히 인식되지만
그 감정이
행동을 지휘하지 않는다.
아, 이건 서운함이다.
그리고 이 서운함은 지금 말하지 않아도 된다.
이 판단이
순간적으로 가능해졌다.
⸻
이건 참는 게 아니다.
참는 건
감정을 눌러두는 것이고,
지금의 나는
감정을 잡고 있다는 쪽에 가깝다.
느끼되, 흘려보내지 않고
생각 위에 올려둔다.
그래서 감정은
쌓이지 않는다.
⸻
감정과 생각이 동시에 작동하면
관계도 달라진다.
상대의 말에
과도한 의미를 붙이지 않고,
내 반응을
나중에 후회하지도 않는다.
대화가 끝난 뒤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하지 않는다.
이건 평정심이 아니라
처리 완료에 가깝다.
⸻
이 상태가 항상 유지되는 건 아니다.
피곤하면
다시 한쪽이 우세해지고,
과부하가 오면
예전 패턴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상태를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번이라도
동시 작동을 경험하면
뇌는 그 길을 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
⸻
감정과 생각이 함께 작동할 때
나는 처음으로
나를 신뢰하게 됐다.
감정이 생겨도
망가지지 않을 거라는 신뢰,
생각이 깊어져도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신뢰.
이 신뢰는
자기 통제가 아니라
자기 안전에서 나온다.
⸻
이 체감은
성숙해졌다는 느낌과 다르다.
더 어른이 된 것도 아니고
더 단단해진 것도 아니다.
그냥
제 기능을 하는 상태에 가깝다.
원래 이랬어야 할 작동.
⸻
감정과 생각이
동시에 켜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확신하게 됐다.
이 회복은
우연이 아니다.
일시적인 컨디션도 아니다.
전선이 연결되었고,
전압이 유지되고 있고,
시스템은 작동 중이다.
나는 이제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