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진다는 증거

24화. 전선이 연결되며 돌아온 사고의 선명함

by 담윤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중간에서 끊겼고,

흩어졌고,

사라졌다.


이제는

한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마치

여기저기 끊어져 있던 전선들이

조심스럽게 다시 연결되는 느낌.



사고의 선명함은

번뜩임으로 오지 않았다.


천재처럼 떠오르는 통찰도,

말이 술술 쏟아지는 순간도 아니었다.


대신

혼탁이 사라졌다.


생각을 하고 나서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라고

되묻지 않게 되었다.


생각이

자기 자리에 남아 있었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비교였다.


전에는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떠오르면

그걸 정리하지 못했다.


A도 맞는 것 같고,

B도 그럴듯하고,

결론은 흐려졌다.


이제는

하나씩 놓고

차이를 볼 수 있었다.


이건 판단력이 아니라

연결력의 회복이다.



말을 할 때도

비슷한 변화가 있었다.


문장을 시작하고

중간에 방향을 잃지 않았다.


끝을 알고 말하는 느낌.


그래서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의미는 전달됐다.


말이 줄어든 게 아니라

불필요한 말이 사라졌다.



이 선명함은

감정에도 영향을 줬다.


감정이 앞서서

사고를 밀어내지 않았다.


서운함, 불안, 짜증이 생겨도

그 감정이

생각의 흐름을 끊지 않았다.


감정은

사고 옆에 놓였다.


이건 통제가 아니라

동시 작동이었다.



나는 이 변화를

가장 먼저

일상에서 느꼈다.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끝내고,

끝낸 일을

다시 붙잡지 않았다.


하루가

하나의 단위로 정리됐다.


이건 성실함이 아니라

회로가 정상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결과였다.



전선이 연결되자

과거의 나도

조금씩 돌아왔다.


예전에 좋아하던 질문들,

생각하는 방식,

사소한 호기심.


그건 nostalgia가 아니라

기능의 복귀였다.


나는 다시

생각하는 사람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중요한 건

이 선명함이

항상 유지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피곤하면 흐려지고,

과부하가 오면 느려진다.


하지만 이제는

그 변화가 이유 없이 오지 않는다.


원인을 알 수 있고

회복 경로도 안다.


이건 큰 차이다.



나는 더 이상

머리가 돌아오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생각이 많아지는 것도,

질문이 늘어나는 것도

위험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살아 있다는 증거다.



전선이 연결된다는 건

완벽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전기가 흐를 길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다시

생각을 이어가고 있다.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