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왜 이 질문을 아무도 대신 답해주지 않았을까?

by 담윤
프롤로그


왜 이 질문을 아무도 대신 답해주지 않았을까?


윤리를 지켜야 한다는 말을

나는 한 번도 쉽게 믿어본 적이 없다.


지키지 않아도 되는 선택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리는 법이 아니다.

강제되지 않고, 어겨도 바로 처벌받지 않는다.

들키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더 효율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늘 궁금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윤리를 이야기하는 걸까.

왜 어겨도 되는 선택을

굳이 붙잡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걸까.


이 질문을 누군가에게 꺼내면

대부분의 대답은 비슷한 방향으로 흘렀다.


“그래도 착하게 살아야지.”

“아이들이 보고 배우잖아.”

“그렇게 살면 마음이 편해.”


하지만 그런 말들은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나는

윤리가 좋은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윤리를 버렸을 때의 삶이

정말로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윤리를 지키는 삶이 아니라,

윤리를 버린 삶을 먼저 상상해보기로 했다.


만약 내가 윤리를 내려놓는다면.

들키지 않는 선에서,

효율적으로,

손해 보지 않게,

사람들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운다면.


처음엔 분명 편해질 것이다.

판단은 빨라지고,

설명은 줄어들고,

관계는 계산 가능해질 것이다.


그런 선택들이 왜 반복되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어떤 사람들은

“안 들키면 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지도.


나는 그 경로를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따라가보고 싶었다.

도덕적 비난 없이,

자기합리화도 없이.


그런데 그 시뮬레이션의 중간에서

자꾸 아이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이건 말하지 마.”

“엄마가 한 건 특별한 경우야.”

“너는 아직 몰라도 돼.”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어쩐지 너무 선명하게 보였다.


윤리적이지 않은 선택을 했다는 사실보다,

그 선택이

아이에게 침묵을 요구하게 되는 구조가

나를 오래 붙잡았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이 질문에

아무도 쉽게 답해주지 않았던 이유를.


윤리를 끝까지 의심해본 사람만이

윤리를 버리는 삶을

끝까지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고,

그 시뮬레이션을 해본 사람만이

이 질문 앞에서 말을 잃는다.


이 글은

윤리를 옹호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한 기록도 아니다.


나는 단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면

어떤 인간이 되는지를

끝까지 생각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연재는

그 생각의 기록이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질문은 남는다.


어떤 선택은 왜 숨겨야 하고,

어떤 선택은 왜 남에게 권할 수 없으며,

어떤 선택은 왜

아이에게 설명할 수 없게 되는가.


이 질문을

나 혼자만 붙잡고 있기엔

조금 오래 생각해버린 것 같아서,

이제는 글로 남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