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는 왜 지키지 않아도 되는 걸까?
윤리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
이 문장은 불편하지만, 사실이다.
윤리는 법이 아니다.
지키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고,
어겨도 당장 대가가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윤리를 어긴 쪽이 더 빨리, 더 많이 얻는다.
그래서 나는 이 질문을 다시 꺼내본다.
윤리는 왜 이렇게 허술한가.
왜 굳이 선택해야 하는가.
왜 지키지 않아도 되는 규칙처럼 존재하는가.
만약 윤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라면
이 질문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윤리를 어겨도 되는 상황이
생각보다 자주 등장한다.
누군가를 속여도 들키지 않을 수 있고,
책임을 미뤄도 문제가 커지지 않을 수도 있고,
약간의 침묵으로
상황을 훨씬 유리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선택 앞에서
윤리는 늘 약해 보인다.
강제력도 없고,
보상도 늦고,
지키지 않았을 때의 이득은
너무 즉각적이다.
그래서 나는
윤리를 “지켜야 할 가치”로 보기 전에
“왜 이렇게 설계되어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보고 싶었다.
윤리는 왜
강제로 만들지 않았을까.
왜 법처럼 촘촘하지 않을까.
왜 항상 선택의 문제로 남겨두었을까.
윤리를 강제하지 않는 사회는
어쩌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윤리는
지키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게 둘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만약 윤리가 법처럼 강제된다면
사람들은 윤리를 선택하지 않는다.
그저 따를 뿐이다.
그리고 따르는 동안
그 기준이 왜 존재하는지
생각하지 않게 된다.
윤리가 약해 보이는 이유는
무능해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약하게 놓여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윤리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어겨도 되는 상황에서
그래도 선택할 때만
그 선택이 어떤 인간을 만드는지 드러난다.
그래서 윤리는
항상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한다.
항상 효율과 비교당하고,
항상 손해처럼 보인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윤리에 대해
어떤 진짜 이야기도 시작할 수 없다.
나는 한동안
윤리를 지키는 사람들을
조금 의심했다.
정말 지키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아직
윤리를 버릴 만큼 절박하지 않아서일까.
그리고 동시에
윤리를 쉽게 버리는 사람들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틀렸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그 선택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끝까지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윤리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너무 많다.
그리고 그 이유들은
대부분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이 연재는
“윤리는 왜 지켜야 하는가”로
바로 넘어가지 않는다.
대신
윤리는 왜 이렇게 쉽게
포기될 수 있는지,
왜 많은 상황에서
굳이 붙잡지 않아도 되는지부터
차분히 바라보려 한다.
윤리가 약해 보이는 이유를
부정하지 않고,
그 약함이
어떤 선택을 가능하게 만드는지
하나씩 따라가보려 한다.
윤리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이 질문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