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을 포기한 걸까, 판을 내려온 걸까?

이기지 않기로 한 선택과 내려온 선택의 차이

by 담윤

10화



윤리를 어긴 선택은

자연스럽게 경쟁의 언어를 불러온다.


누가 더 빠른지,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

누가 더 효율적인지.


이 언어는

처음부터 공격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적이고,

성숙한 판단처럼 느껴진다.


“다들 그렇게 하잖아.”

“이 정도 경쟁은 어쩔 수 없어.”

“가만히 있으면 뒤처져.”


이 말들은

선택을 부추기기보다는

상황을 설명하는 말처럼 보인다.


그래서 경쟁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처럼 깔린다.


윤리를 버린 선택이

경쟁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효율은

비교를 통해서만

효과를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빠른 사람,

더 적게 쓰는 사람,

더 많은 결과를 얻는 사람.


효율은

항상 상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효율이 기준이 되는 순간,

사람은 자연스럽게

비교의 축 위에 올라간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경쟁을 싫어해.”

“난 남과 비교하지 않아.”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경쟁의 판 안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효율의 언어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제일 낫잖아.”

“그렇게 해야 살아남지.”

“지금은 감정 따질 때가 아니야.”


이 말들은

경쟁을 부정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경쟁의 규칙을 받아들였다는 선언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

이 질문을 바꾸게 되었다.


나는 경쟁을 포기한 걸까,

아니면

아예 판을 내려온 걸까.


경쟁을 포기한다는 건

여전히 같은 판 위에 있으면서

이기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판을 내려온다는 건

그 기준 자체를

더 이상 쓰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경쟁을 포기한 사람은

여전히

이긴 사람을 의식한다.


판을 내려온 사람은

이김과 짐을

같은 질문으로 묶지 않는다.


윤리를 선택한다는 건

대부분

경쟁을 포기하는 선택이 아니다.


그보다는

비교가 기준이 되는 판에서

조용히 내려오는 선택에 가깝다.


이 선택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칭찬도 없고,

보상도 없다.


오히려

뒤처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판을 내려오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무엇을 이기지 않아도 되는지,

어떤 비교를 하지 않아도 되는지,

어디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지.


경쟁의 판 위에서는

항상 더 나은 선택을

증명해야 한다.


판을 내려오면

그 증명이

더 이상 필요 없다.


나는 이 지점에서

다시 아이들을 떠올렸다.


아이에게

“저 사람보다 더 잘해야 해.”

라고 말하는 대신,


“이건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


윤리를 선택한다는 건

아이에게

이기는 법을 가르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을

이김과 짐으로

설명하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이 선택은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종종

무기력이나 회피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판을 내려온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저

다른 기준으로

선택하고 있을 뿐이다.


이 회차에서

경쟁을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건

분명히 해두고 싶다.


윤리를 어긴 선택이

경쟁으로 흘러가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건

효율이 비교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교의 판에서

내려오는 선택이야말로

윤리가 가장 조용히 작동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다음 회차에서는

이 질문으로 이어가려 한다.


윤리를 선택한 사람은

무엇을 얻는 대신

무엇을 잃지 않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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