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편함이 다음 선택을 요구하는 방식
9화
효율은
처음부터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합리적으로 보이고,
현명한 선택처럼 느껴진다.
같은 결과를 더 빠르게 얻고,
같은 문제를 더 적은 비용으로 해결하는 것.
효율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이다.
그래서 윤리를 어긴 선택도
대개 효율의 얼굴로 다가온다.
감정을 덜 쓰고,
설명을 줄이고,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문제는
효율이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효율적인 선택은
성공 경험을 남긴다.
그리고 사람은
성공했던 방식을
다시 사용한다.
한 번 편했던 선택은
다음에도 떠오르고,
다음 선택에서도
같은 기준을 요구한다.
이때부터
효율은
도구가 아니라 기준이 된다.
“이게 제일 빠르니까.”
“이게 제일 덜 번거로우니까.”
“괜히 복잡하게 갈 필요 없잖아.”
이 말들은
선택을 설명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선택들을
미리 배제하는 말이다.
효율은
질문을 줄인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다른 방식은 없는지,
누가 감당해야 하는지.
그 질문들이 사라질수록
선택은 더 쉬워진다.
그래서 효율은
중독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
처음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쓰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방식을 쓰기 위해
상황을 해석하게 된다.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
문제로 인식하게 되고,
효율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번거로운 변수로 취급된다.
이 지점에서
관계가 달라진다.
사람은
같이 판단하는 대상이 아니라,
효율을 방해하거나
돕는 요소로 보이기 시작한다.
통제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효율은
결정권을 한 곳에 모을수록
더 잘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효율은
항상 다음 단계를 요구한다.
조금 덜 공유하고,
조금 더 빨리 결정하고,
조금 더 많은 것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나는 이 흐름을
중독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효율을 한 번 맛본 사람은
효율이 없는 상태를
불편하게 느끼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설명이 길어지면 답답해지고,
질문이 많아지면 피로해지고,
결정이 늦어지면
괜히 불안해진다.
효율이
기준이 된 상태다.
이 상태에서
윤리는 항상 불리해진다.
윤리는
질문을 되살리고,
설명을 요구하고,
속도를 늦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효율에 익숙해질수록
윤리는
점점 비현실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나는 이 지점에서
다시 아이들을 떠올렸다.
효율이 기준이 된 내가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하게 될지를.
“그냥 그렇게 해.”
“시간 없어.”
“엄마 말이 맞아.”
이 말들은
효율적인 말이지만,
사고를 멈추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효율은
삶을 빠르게 만들지만,
선택의 폭을 넓혀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효율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항상
다음 효율을 요구한다.
이 회차에서
효율을 버리자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건
정확히 짚고 싶다.
효율은
조심하지 않으면
선택의 기준이 아니라
선택을 지배하는 기준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윤리는
점점 말하기 어려운 선택이 된다.
다음 회차에서는
이 질문으로 이어가려 한다.
윤리를 어긴 선택은
왜 경쟁과 비교의 구조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