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천장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가장 논리적인 선택
"주문하시겠어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아, 근데 뜨거운 물 반,
찬물 반 섞어 주시겠어요?"
아르바이트생의 눈동자가
잠시 갈 곳을 잃는다.
뜨거우면 뜨겁고,
차가우면 차가운 거지.
이도 저도 아닌
'미지근한' 커피라니.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한 마디 덧붙인다.
"네, 바로 마실 수 있게요.
얼음은 넣지 마시고요."
20대의 나는 지독한
'얼죽아' 회원이었다.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손이 꽁꽁 얼어가며
아이스커피를 들고 다녔다.
남들은 내가
젊음을 과시한다고,
멋 부린다고 생각했겠지만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태생적으로
뜨거운 걸 견디지 못하는
'고양이 혀'를 가졌다.
성격은 급해 죽겠는데
뜨거운 걸 호호 불어가며
식힐 인내심은 없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들이키면
결과는 뻔했다.
조금만 뜨거워도 어김없이
입천장 껍질이 홀라당 벗겨졌다.
하루 종일 혀끝에 닿는
그 까슬하고 너덜거리는
살껍질의 불쾌한 감촉.
그게 끔찍이도 싫어서
나는 한겨울에도
아이스를 고집했다.
혀가 데이고
입천장이 벗겨지는 고통보다는,
차라리 손이 시린 게 나았으니까.
하지만 아이 셋을 낳고,
서른다섯이 된 지금.
나는 이제
'미지근한 커피'를 마신다.
20대엔 입천장만
보호하면 됐지만,
출산 후엔 시려진 잇몸과
뼛속까지 보호해야 했으니까.
뜨거운 건 입천장이 거부하고,
차가운 건 뼈마디가 거부하는
진퇴양난의 상황.
여기서 내가 찾은
가장 논리적인 타협점은
바로 '미지근함'이었다.
멋이 없어서가 아니다.
내 입천장의 평화와
내 몸의 안녕을 지키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온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커피 취향 하나 바꿨을 뿐인데,
세상을 대하는 내 태도도
이 온도를 닮아가는 것 같다.
20대의 나는
모든 게 뜨겁거나,
아니면 차가워야 한다고 믿었다.
사랑도, 꿈도, 인간관계도.
화르르 불타오르거나
냉정하게 돌아서거나.
하지만 아이 셋을 키우는
전쟁 같은 현실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뜨거운 열정은 금방 식고,
차가운 이성은
때론 상처가 된다는 것을.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펄펄 끓는 감동이나
얼음장 같은 냉철함이 아니었다.
지치지 않고,
다치지 않고,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온도.
바로 '미지근함'이었다.
남들은 이걸 보고
열정이 식었다고 할지 모른다.
혹은 너무 계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변명 대신
조용히 미지근한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다.
데이지 않고, 시리지 않게.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이 편안함.
나는 이제부터
이 효율적인 온도로
나의 육아와,
나의 인생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러니 부디,
너무 뜨겁게 기대하지도 말고
너무 차갑게 판단하지도 말고.
딱 마시기 좋은 온도로
지켜봐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