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설계하던 23살 가장, 친구의 눈부신 인생 역전
"야! 제니야! 일어나!
1교시 늦었어!"
20대 초반의 나는
매일 아침 알람시계였다.
학교 앞 자취방.
이불 속에 파묻혀
세상 모르고 자는 친구를 흔들어 깨우고,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묶게 한 뒤
손을 잡아끌고 강의실로 뛰었다.
나의 대학 동기, '제니'.
(아침잠 많고 천하태평이라
내가 붙여준 별명이지만,
그녀의 20대는 그 누구보다 치열했다.)
그렇게 잠 많고 느긋하던 제니가
나보다 먼저 대형 사고를 쳤다.
"나... 임신했어."
스물세 살.
친구들이 졸업 작품을 준비하고
해외여행 계획을 짤 때,
제니는 불룩 나온 배를 안고
현실이라는 전쟁터로 뛰어들었다.
화려한 웨딩드레스도,
축복받는 결혼식도 없었다.
식조차 올리지 못한 채
단칸방에서 시작된 신혼.
그것도 딸 쌍둥이였다.
보통이라면 남편이 돈을 벌고
아내가 육아를 했겠지만,
제니네는 반대였다.
생활력이 강했던 제니가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 한 몸을 이끌고
일터로 나갔다.
우리의 전공은 '기계.‘
그리고 둘다 장비설계를 했었다.
거친 현장과 남자들 사이에서
그녀는 밤새 도면을 치고,
장비들이 잘 납품될때까지 지켜보고
열심히 돈을 벌었다.
남편이 집에서
쌍둥이를 돌보는 동안,
제니는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탱했다.
그리고 1년 뒤, 2015년.
나 역시 스물네 살에
덜컥 결혼을 했다.
우리는 캠퍼스의 낭만 대신
분유값과 기저귀값을 걱정하는
'현실 동지'가 되었다.
"제니야, 너 괜찮냐?
손목이 다 나갔는데..."
"괜찮아. 버텨야지.
애들이 둘인데 내가 쉴 때가 어딨냐."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늘 씩씩했지만,
나는 알았다.
그 씩씩함이 실은
울음을 꾹 참은 소리라는 것을.
남들이 클럽에서 밤을 새울 때
그녀는 도면 앞에서 밤을 샜고,
남들이 맛집 투어를 할 때
그녀는 공장 밥을 먹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7년을 버텼다.
그리고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제니는 인생의 또 다른 챕터를 열었다.
"나 이혼해. 그리고... 내 센터 차릴 거야."
그동안 틈틈이 따놓은
필라테스 자격증.
그것이 그녀의 무기였다.
기계 도면을 그리던 그 꼼꼼함으로
이번엔 사람의 몸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보란 듯이
필라테스 센터 원장님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만났다.
"야, 김원장! 때깔 좋은데?"
평일 오전 10시.
햇살이 쏟아지는 그녀의 센터에서
우리는 마주 앉았다.
한때 기계 기름 냄새가 났던
그녀의 손은 이제
우아하고 탄탄한 근육질로 변해 있다.
그녀가 타주는
미지근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우리는 지난날을 회상한다.
남들은 20대에 누릴 걸 다 누리고
이제야 육아 전쟁, 시댁 갈등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제니는 결혼, 출산, 육아,
가장 노릇, 그리고 이혼과 창업까지.
인생의 매운맛, 쓴맛, 단맛을
초고속으로 마스터하고
'화려한 돌싱'이자 'CEO'가 되어 있다.
"야, 나 그때 진짜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억울하진 않네.
나이들어 고생할 거
미리 당겨서 다 했다 싶어."
제니가 호탕하게 웃는다.
23살과 24살.
철없던 시절에 엄마가 되어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던 우리.
나는 ADHD를 이겨내고 글을 쓰게 되었고,
너는 이혼을 이겨내고 사장님이 되었다.
우리는 남들보다 10년 일찍 문을 닫고 나온
육아의 세계를 뒤로하고,
가벼운 몸으로 30대를 즐긴다.
"고생했다, 우리."
"그러게. 우리 진짜 멋지게 컸다."
나는 커피잔을 들어
제니의 잔에 부딪친다.
결혼식은 못 했지만,
그 누구보다 멋진
'인생의 대관식'을 치른 내 친구
너의 30대는
20대의 눈물만큼이나
찬란하게 빛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