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촉할수록 더 하얗게 질려버리는 너를 보며 깨달은 나의 실수
우리 집 아침 풍경은 늘 전쟁터였다.
등교 시간은 다가오는데
아이는 세월아 네월아,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물고 씹지를 않는다.
옷을 입으라고 하면 소매 한쪽만 끼운 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내 속은 타들어 간다.
시계바늘은 8시 20분을 넘어가고 있다.
결국 참다못한 내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 같은 말이 튀어 나간다.
"아들! 빨리 좀 해! 늦었다니까!"
"엄마가 몇 번을 말해! 딴생각하지 말고 움직이라고!"
내 목소리가 커지면,
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허둥지둥 움직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빨리 하라고 재촉하면 할수록,
아이의 손은 더 꼬이고, 양말은 뒤집어 신고,
젓가락질은 더 서툴러진다.
급기야 현관에서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나서려다 넘어져 엉엉 울음을 터뜨린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아니, 급해 죽겠는데 왜 칠칠맞게 넘어져?
정신 안 차릴래?"
나는 몰랐다.
나의 그 "빨리빨리"라는 재촉이,
아이의 뇌를 마비시키는 주문이었다는 것을.
남편 동운 씨는 옆에서 늘 이렇게 말했다.
"여보, 애 좀 그만 쪼아.
기다려주면 알아서 하겠지.
당신 닮아서 신중한 거잖아."
그 말을 들으면 나는 더 화가 났다.
"당신은 몰라! 사회가 얼마나 냉정한데.
저렇게 느려 터져서 나중에 학교 생활이나
제대로 하겠어?
내가 지금 악역을 맡아서라도 고쳐놔야 해."
하지만 그건 내 불안이었다.
나 역시 어릴 때 "행동이 굼뜨다", "답답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상처가 있었기에, 내 아이만큼은
'빠릿빠릿하고 유능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강박이었다.
어느 날, 내가 아이에게 숙제를 시키며
닥달하고 있을 때였다.
"이거 쉬운 문제잖아. 왜 안 풀어? 빨리 써. 시간 없어."
아이는 연필을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손에 땀이 흥건했다.
그런데 아이가 쓴 답을 보니,
글씨가 삐뚤빼뚤 엉망진창이었다.
평소에는 또박또박 잘 쓰던 아이가,
내 재촉 앞에서는 마치 글씨를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퇴행해버린 것이다.
그날 밤, 아이를 재우고 나서 문득 나의
예전 회사 생활이 떠올랐다.
상사가 뒤에 서서 "그 보고서 아직이야? 빨리 좀 넘겨"
라고 할 때마다,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며
오타를 연발했었다. 평소라면 10분이면
끝낼 일을 1시간 동안 붙들고 쩔쩔맸었다.
'과잉 각성(Hyper-Arousal).'
우리 같은 사람들은 외부 압박이 들어오면
뇌의 경보 시스템이 너무 예민하게 작동한다.
"빨리 해!"라는 말은 우리에게
"지금 비상사태야! 맹수가 쫓아오고 있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면 뇌는 이성적인 사고(전두엽)를 꺼버리고,
오직 공포 반응(편도체)만 켜버린다.
생각이 멈추고, 몸이 굳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빨리 하라고 할수록 우리는
물리적으로 더 느려질 수밖에 없는
뇌 구조를 가진 것이다.
아아, 나는 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아이는 게으름을 피운 게 아니었다.
엄마의 다그침이 무서워서,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에 긴장하다가
온몸이 굳어버린 것이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신발 끈을 묶으려다
넘어진 아이를 보며,
나는 "정신 안 차리냐"고 또 상처를 줬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시간은 8시 25분. 늦기 직전이었다.
평소 같으면 "뛰어!"라고 소리쳤겠지만,
나는 꾹 참고 아이의 눈을 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아들, 시간 괜찮아. 천천히 신발 신어도 돼.
엄마가 기다릴게."
그러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항상 허둥대던 아이가, 차분하게 숨을 한번
고르더니 단 한 번 만에 신발을
척척 신고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심지어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엄마, 나 다 했어. 가자."
그동안 아이를 느리게 만든 범인은
아이의 기질이 아니라 나의 조급함이었다.
내가 기다려주자 아이는 자기만의 속도를 찾았다.
그리고 그 속도는, 내가 억지로 끌고 갈 때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빨랐다.
남편 말이 맞았다.
"당신 닮아서 신중한 거잖아."
그래, 너는 느린 게 아니라 신중한 엔진을
달고 태어난 아이야.
예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지만,
한 번 달리기 시작하면 누구보다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멋진 엔진.
미안해. 엄마가 이제는 재촉하지 않을게.
네가 시동을 걸 때까지,
현관문 앞에 서서 가만히 너의 호흡을 지켜봐 줄게.
"빨리빨리"라는 말 대신,
"괜찮아, 천천히 해"라는 말이 너에게
더 빠른 주문이라는 걸, 엄마가 이제야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