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이 힘든 너에게: "도망쳐도 괜찮아"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인정하고, 에너지를 지키는 법

by 담윤

내 휴대폰에는 '읽지 않은 메시지'를

알리는 빨간 숫자가 항상 '300+'을 넘기고 있다.

특히 엄마들이 모인 단톡방, 대학 동기 방, 가족 방...

그곳에서는 쉴 새 없이 대화가 오간다.

"오늘 날씨 좋네요~"

"다들 점심 뭐 드세요?"

(이모티콘, 사진, 웃음소리...)

남들은 그 대화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ㅋㅋㅋ"를 날리고 정보를 공유한다.

하지만 나는 그 빨간 숫자를 볼 때마다

거대한 파도가 덮쳐오는 기분을 느낀다.

'지금 답장해야 하나?

타이밍을 놓쳤나?

내가 쓴 말이 너무 딱딱한가?

이 이모티콘은 오해를 사지 않을까?'

메시지 하나를 보내는 데도

나는 수십 번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남들에게는 3초면 되는 일이,

나에게는 엄청난 '감정 노동'이자 '에너지 소모'다.

그래서 나는 자주 휴대폰을 뒤집어 놓는다.

일종의 '도망'이다.

ADHD 성향, 특히 조용한 유형의 사람들은

'사회적 배터리'가 남들보다 빨리 닳는다.

우리는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사람을 좋아하고,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

문제는 우리가 상호작용할 때

'고성능 센서'를 켜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표정, 말투의 뉘앙스, 공기의 흐름...

이 모든 비언어적 정보를 하나하나 분석하고

처리하느라 뇌가 과부하에 걸리는 것이다.

이걸 '마스킹(Masking, 정상인처럼 보이기 위한 연기)'이라고 한다.

밖에서 멀쩡하게 웃으며 대화하고 돌아온 날,

집에 오자마자 옷도 못 갈아입고

현관에 주저앉아 본 적이 있는가?

그게 바로 배터리가 방전된 증거다.

그런데 나는 내 아이에게 또 똑같은 실수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다가도,

어느 순간이 되면 슬그머니 무리에서

빠져나와 혼자 모래를 만지작거렸다.

다른 엄마들이 "어머, 쟤는 왜 혼자 놀아요?

같이 어울리지"라고 하면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아이에게 달려가 속삭였다.

"가서 친구들이랑 놀아. 왜 혼자 있어?

사회성이 좋아야지."

아이는 곤란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엄마, 그냥 좀 쉬고 싶어."

나는 아이를 억지로 미끄럼틀 쪽으로 떠밀었다.

아이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이 얼마나 외로워 보였는지,

그때는 몰랐다.

아이는 외톨이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친구들의 고함 소리, 뛰어다니는 움직임,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 속에서

'입력 과부하'가 온 것이었다.

그래서 잠시 '동굴'이 필요했던 것이다.

시끄러운 서버에서 잠시 '로그아웃'해서,

과열된 뇌를 식힐 시간이 필요했던 것뿐이다.

그걸 엄마인 내가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의심했으니,

아이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는 내 손을 뿌리치고

앞서 걸었다. 그 작은 등이 말하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하나도 몰라.'

그날 밤, 나는 단톡방 알림을 모두 '무음'으로 바꿨다.

그리고 아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들, 아까 엄마가 억지로 놀라고 해서 미안해.

사실 엄마도 사람들 많은 곳에 가면 머리가 지끈거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엄마도 그래? 어른인데도?"

"응. 어른도 그래. 우리는 남들보다

귀가 밝고 눈이 좋아서,

사람들이 많으면 금방 피곤해지나 봐."

우리는 그날 우리들만의 '암호'를 정했다.

사람들 틈에서 힘들거나 지칠 때,

억지로 웃지 말고 엄마에게 조용히 와서

이렇게 말하기로.

"엄마, 배터리가 다 됐어요."

그 말을 들으면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이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나주기로 약속했다.

"그래, 충전하러 가자."

그 약속을 한 뒤로 아이는 오히려 친구들과 더 잘 놀게 되었다.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비상구'가 있다는 사실이,

아이를 안심시켰기 때문이다.

도망쳐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아이는 역설적으로 도망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살다 보면 세상은 너에게 "인싸가 되어야 해",

"네트워크가 중요해"라고 강요할 거야.

단톡방에서 빠져나오면 큰일이 날 것처럼

겁을 줄지도 몰라.

하지만 기억해.

너를 지키는 건 수백 명의 얕은 인맥이 아니라,

혼자서도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는

너 자신의 에너지란다.

그러니 힘들면 언제든 로그아웃해.

읽지 않은 메시지가 쌓여도 괜찮아.

친구들 모임에서 먼저 일어나도 괜찮아.

네가 무례해서가 아니라,

너 자신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라는 걸

진짜 친구들은 알아줄 거야.

엄마는 네가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 너는 누구보다 깊고,

풍요로운 세상을 만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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