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나도 모르게 설거지를 하고 있네?"... 내가 약을 먹고 처음 느
"정신과 약이라니... 내가 아이를 망치는 건 아닐까?"
처음 병원에서 약물 치료를 권유받았을 때,
나는 덜컥 겁부터 났다.
인터넷 맘카페에는 온갖 괴담이 떠돌았다.
'아이가 로봇처럼 변한다더라',
'한 번 먹으면 평생 못 끊는다더라'.
약을 먹인다는 건 마치
"나는 아이를 망친 엄마입니다"라고
인정하는 패배 선언 같았다.
하지만 아이는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노력해봐"라는 말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뇌의 벽' 앞에 아이는
매일 좌절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에게 약을 먹였고,
아이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나 역시 함께 복용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내 인생을 뒤흔든 충격을 받았다.
나는 평생 '설거지'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인 줄 알았다.
싱크대에 쌓인 그릇을 보면
뇌에서 비상벨이 울렸다.
'아, 해야 하는데... 귀찮아... 몸이 안 움직여...'
마치 뇌와 몸 사이에 거대한
투명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벽을 뚫으려면
엄청난 기합과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런데 약(아토목세틴)을 먹고 며칠 뒤,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거실에 앉아 있다가 목이 말라 부엌에 갔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비장한 결심도, "해야지!" 하는 기합도 없었다.
그냥, 물 흐르듯이.
수세미를 들고 그릇을 닦고 있는 내 손을 보며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왜 안 힘들지?"
그건 마치 녹슬어서 삐걱거리던
자전거 체인에 최고급 기름칠을 한 느낌이었다.
페달을 밟으려고 용쓰지 않아도,
바퀴가 스르륵 굴러가는 그 부드러움.
"아... 남들은 이렇게 살고 있었구나."
보통 사람들은 '해야지' 생각하면
바로 몸이 움직인다는데,
나는 그동안 모래주머니를 차고
늪지대를 걷고 있었구나.
억울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 후에 처방받은 메틸페니데이트는 또 달랐다.
아토목세틴이 '스며드는 변화'였다면,
이건 '스위치가 켜지는 변화'였다.
약을 먹고 나니 머릿속을 꽉 채우던
안개가 걷히고, 시야가 쨍하게 선명해졌다.
그리고 내 안에서 명료한 목소리가 들렸다.
"좋아, 지금 빨래 개고 나서, 바로 원고 쓰자!"
전에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 도망치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약은 내 뇌에 '강력한 모터'를 달아주었다.
내가 핸들을 꺾는 대로,
내가 엑셀을 밟는 대로 차가 쭉쭉 나가는 쾌감.
"내가 내 의지대로 내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그 효능감이 나를 춤추게 했다.
약을 먹은 아이도 달라졌다.
"엄마, 약 먹으니까 선생님 목소리가 귀에 쏙쏙 들어와. 전에는 웅웅거리는 소리 같았는데."
"숙제하는 게 별로 안 힘들어. 그냥 하면 되던데?"
아이는 로봇이 된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동안 뇌의 '벽' 때문에 억눌려 있던
진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엄마들은 묻는다.
"약 기운으로 하는 건 가짜 아닌가요?"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눈이 나쁜 아이가 안경을 쓰고 본 세상이
가짜가 아니듯,
도파민이 부족한 우리가 약의 도움으로
해낸 일들도 모두 진짜 우리의 성취다.
약은 아이를 조종하는 리모컨이 아니다.
아이가 "나도 할 수 있네?"라는 자신감을 얻을 때까지, 잠시 잡아주는 '두발자전거의 보조 바퀴'일 뿐이다.
오늘 아침, 나는 아이에게 약을 건네며 말했다.
"아들, 이건 머리가 좋아지는 약이 아니야.
네가 억지로 힘쓰지 않아도,
마음먹은 대로 몸이 움직이게 도와주는
'자전거 기름' 같은 거야.
네가 씽씽 달리는 법을 몸으로 익히면,
그때는 기름칠을 안 해도 잘 달릴 수 있어."
아이는 꿀꺽 약을 삼키고 가볍게 학교로 뛰어갔다.
나는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아이에게 '독'을 준 게 아니라,
"하기 싫은 게 아니라, 할 수 없었던 것"이라는
억울함을 풀어줄 '열쇠'를 쥐여준 거니까.
우리는 이제, 벽을 뚫지 않고도 문을 열고
나가는 법을 배웠다.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