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뉴스 기상캐스터가 내일 첫눈이 많이 내릴 것이니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전했다. 그 때만 해도 뭐 별 감흥이 없었다. 아침에 눈을 떠 밖을 보니 하얀눈이 온세상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첫눈이 이렇게 많이 내린 적인 있었던가! 거기다 카톡방에 교수님의 ‘눈이 내리네’ 노래를 피아노치는 모습과 소리를 보고 들으니 더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첫눈이 오면 마음이 설렌다. 첫눈이 오면 멀리서 사랑하는 사람이 오는 것처럼 기분이 묘하다. 나도 모르게 첫눈을 맞으러 밖으로 나가고 싶다. 밖에 나가 우산을 쓰지 않고 눈을 흠뻑 맞고 즐기고 싶다.
첫눈 하면 떠오르는 것이 첫사랑이다. 대학교 때 미팅을 하고 나서 상대가 그저 그래서 첫눈오면 00에서 00시에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그 해 첫눈은 느즈막에 내렸다. 많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첫눈은 첫눈이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반신반의하며 그녀도 그 약속을 잊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갔다. 가는 동안 왠지 모르게 불안했으나 혹시 하며 그녀 생각을 하며 걸어갔다. 그런데 그녀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가까스로 떠오르는 얼굴은 희미한 영상이었다. 하기는 봄에 미팅해서 첫눈 내리는 겨울에 만나자고 한 내가 이상한 사람이지. 그러나 그때는 그것이 낭만이고 추억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드디어 약속장소인 00다방에 도착해 주변을 돌아보니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약속시간이 덜 되어서 오지 않았을 수도 있어, 기다려 보지 뭐’하며 시계만 보며 머리를 탁자에 묻혔다.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그녀가 내 맞은 편에서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했다. 난 깜짝 놀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봄에 미팅 때 만났을 때는 수수하고 별 특징이 없었던 그녀가 화장을 하고 나타나니 몰라볼 정도로 예뻤다. 잊지 않고 나와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자기도 내가 잊었으면 어떡하나하고 걱정하며 나왔다고 하며 수줍게 웃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안부를 묻고 간단하게 커피를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오니 눈이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의 두번째 만남을 축하라도 해주듯이 하얀 눈이 소리없이 내렸다. 밖은 연인들로 가득찼다. 모두 들뜬 듯이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며 첫눈을 즐겼다. 나도 다른 연인들처럼 그 무리들과 어울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그녀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그녀는 내가 잡은 손을 한번은 뺐지만 재차 잡은 손은 마지 못해 가만이 잡아주었다. 그렇게 부드럽고 고울 수가 없었다. 침묵은 부자연스러웠지만 날씨와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지 더 설레였다. 말을 하지 않아도 뭔가 통하는 이심전심으로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 지를 알 수 있었다. 그날 우리는 많이 걸었고 긴 시간을 같이 보냈다. 그 후에 3개월 정도 만나 많은 얘기와 추억을 남기고 헤어졌다.
그 후로 오늘처럼 첫눈이 오는 날이면 그 때의 추억을 어루만지곤한다. 오늘 그녀도 나와 같이 나를 떠올리며추억에 잠길까 그런 생각을 하니 입가에 엷은 미소가 찾아온다. 이런 추억이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 행복하면서도 내가 그 때 좀 더 잘해줄 것을 하며 반성도 해본다.
(24.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