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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by 김근상

“ 야! 00가 이번에 여행 책 두 권을 출간한대! ”

“ 우리 출판기념 때 만나서 축하해 줘야 않겠냐? ”


먼저 시집을 출간했던 친구의 다급한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내 친구 모임 중 ‘한마음’이란 친구들이 있다. 우리가 만난 것은 1980년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벌써 만난 지 45년째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 1학년 풋풋했던 시절에 만났다. 우리가 다닌 대학은 교사를 양성하는 단과대학으로 모두 교사 지망생이 모인 곳이다.


나는 고교 시절을 성남시에서 보냈다. 대학은 서울에 있는 세칭 사립 명문대학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부친께서는 사립대학은 등록금이 비싸 보낼 수 없다고 하셨고, 나도 가정형편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았다. 수업료가 면제되고 육성회비만 납부하면 장차 직장이 보장된 대학에 진학하라곤 하셔서 지방에 있는 국립 사범대에 원서를 낼 수 밖에 없었다. 들어가서 보니 남학생과 여학생이 반반이고 모두 가정형편이 비슷 비슷했다. 그 당시 내가 다닌 대학은 과별 모집이 아닌 계열별로 모집을 했고 1년을 공부한 후 적성과 성적에 따라 전공을 선택했다. 나는 국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한문과가 있는 인문계열에 진학했다.


우리는 성향이 비슷했고 취미도 비슷해서 자주 어울렸다. 때로는 막걸리를 먹으며 그 당시 000군사정권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으며 정치, 경제, 사회 다 방면에 걸쳐 치열하게 토론하며 보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한마음’ 친구들은 2학년 때는 모두 전공과목이 달랐다. 우리는 전공과목만 다른 것이 아니었다. 서울, 경기, 충남, 전북 네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 중에 두 친구는 우리와 대학이 달랐다. 친구가 된 동기는 수학 공식 ‘A=B, B=C, ∴ A=C’ 따라 친구의 친구가, 친구가 된 것이다. 우리는 그 시절 모임을 갖기로 하고 매달 만났다. 군대를 제대하고 5명은 중등교사가 되었지만 사범대가 아닌 인근에 위치한 국립대 행정학과 친구는 고시에 번번이 실패했다. 그 후 신용보증기금회사에 들어가 일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다며 도배사가 되었다.


우리는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1년에 두 번씩 정기적인 만남을 유지했다. 몇 년 전에는 부부동반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6명 모두 부인은 교사였으며 현재 모두 건강한 편이다.


충남에서 교편을 잡았던 프랑스어가 전공인 00은 고향인 공주에 작은 도서관을 지어 운영하고 있다. 시인으로 등단해 시집 3권을 발간하였다. 자신의 도서관에서 독서 교실, 작은 음악회, 세미나를 개최하며 행복한 노후 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 교사를 한 00은 정년을 1년 남겨두고 명예 퇴직 후 해외봉사단체인 코이카 활동으로 스리랑카에 다녀왔다. 귀국 후 6개월 쉬다가 쉬는 것이 무료하다며 베트남 국제학교에서 주재원 자녀를 가르치겠다며 지난 달 출국했다.


전북에서 평생 교직을 종사했던 00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시골주택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그곳 단군성전에서 해설사로 하루 3시간씩 일하고 있다.


유난히 여행을 좋아했던, 미술교사로 30년을 종사한 00은 10년 전에 명퇴를 한 후에 세계여행을 다니며 여행작가가 되어 금번에 동남아 여행기 두권을 낸 것이다.


나는 이들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소통하며, 지금까지 지내왔던 것처럼 인생 2막도 보내고자 한다.

(25.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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