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보! 어떡해! "
" 아!~ 아!~ 아!~ "
아내의 외마디가 귓가를 때렸다.
그렇다.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 겪어 정신이 혼미해 경황이 없었는데 옆의 조수석에서 앉아 있는 아내는 얼마나 놀랐을까!
눈길 교통사고로 몇 중 충돌을 매스컴에서 뉴스로 봤지만 내가 경험할 줄을 꿈에도 몰랐다. 운전대는 나와 상관없이 좌우로 흔들렸고 차는 갈지자를 여러 차례 그리며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차는 가드레인 앞 눈덩이를 타고 넘어가려고 했다. 순간 어떻게 해서든지 브레이크를 밟아야지하며 힘차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다행스럽게 가드레인 앞 눈덩이 속에 바뀌와 보닛을 묻은 채 차는 멈추어 주었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가드레인 밖은 낭떠러지 계곡이었다. 하마터면 가드레인 밖을 넘어 차가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보다 더 섬찟한 것은 반대편의 승용차와 버스가 줄지어 거북이 걸음을 하고 오고 있었다. 그 차들과 부딫쳤더라면 최소 5중 충돌을 되었기 때문이다.
눈덩이에 박혀있는 차를 빼내기 위해 후진했다. 하지만 후진이 잘 안되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1차선과 반대 차선의 차가 없었다. 아내는 무섭다며 그만하라고 소리쳤다. 차를 빼서 2차선 전진 방향으로 바퀴를 반듯하게 한 후에 차의 상태를 보고 싶었다. 무서워 떨고 있는 아내를 진정시켰다. 나는 ‘침착하자! 침착하자’를 되내이며 달아난 이성을 찾아야 했다. 후진기어 넣고 페달을 여러 번 나누어 밟으니 조금씩 좌우로 미끌리며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앞 범퍼는 약간 내려와 있었고 범퍼 밑 장식용 긴 플라스틱은 범퍼에 매달려 덜령거렸다. 바퀴는 눈 속에 파묻혀 눈이 바퀴를 감아 눈뭉치로 변해 있었다. 등산 스틱을 꺼내 눈을 바퀴에서 분리해냈다. 그런 후에 차에 비상용으로 준비된 미끄럼 방지용 분무기를 마구마구 뿌렸다.
그리고 목적지인 용평리조트로 향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전에도 접촉사고를 내기도 하고 당하기도 해 어느 정도 내공이 쌓였다고 자부하던 나도 운전을 하는 내내 떨림은 어쩔 수 없었다. 아내는 계속 심장이 벌렁벌렁댄다며 천천히 가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한다. 나도 벌렁거린 심장을 부둥켜 안고 '침착하자. 침착하자'를 되내이면서 최대한 속도를 늦추며 갔다. 가는 중에 눈길에 미끄러져 접촉 사고 낸 후 비상등을 켜 놓은 채 사람들은 밖에 나와 떨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하마터면 저럴 뻔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내는 유난히 설경을 좋아한다. 나도 아내와 마찬가지로 하얀 눈꽃 세상이 늘 신비스럽고 경외롭다. 해마다 눈이 많이 온다는 날씨 예보를 접하면 내 전두엽은 활성화된다. 우리는 서로의 일정을 확인해 약속이 없는 날을 정해 떠난다. 설경 여행은 매년 한두 번은 하는 편이다.
우리는 3월 4일을 디데이로 잡고 몇 번 가서 좋은 설경 추억을 가지고 있는 발왕산 정상 설경을 보기 위해 07:40분에 집을 나섰다. 고속도로는 3일 연휴 후라 출근 차들로 인해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양지를 지나니 갑자기 뻥 뚫려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젊었을 때는 괜한 경쟁심이 발동이 되어 과속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주마간산격으로 밖의 풍경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은 가급적 제한 속도로만 달린다. 차창 밖으로 보인 대지는 오랜 풍파와 인내를 겪고 돌아와 거울앞에 선 누님 같은 꽃이라는 어느 시인의 구절이 떠올랐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강원도인 원주를 지나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속사부터는 앞이 안보일 정도로 눈이 내렸다. 대관령 읍내에 도착하니 눈이 엄청 쌓여 있었다. 주민들은 눈 치우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완전히 딴세상이었다. 겨우겨우 용평리조트 스키장에 도착했더니 아뿔사 이게 웬일인가!
우리를 발왕산정상으로 데려갈 케이블카가 강풍 때문에 오늘은 운행을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너무 허탈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25.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