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저게 뭐야! 돈 아니야!”
“누가 돈을 말리고 있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고 갔다.
나는 친구들보다 교사의 길을 조금 빨리 걸었다. 병역을 마친 1985년 6월 13일 자로 충남 서천군 00고에 발령을 받았다. 그해 7월 00일에 친구 세 명과 공주 사곡천 유원지로 놀러 갔다. 당시 휴대용 가스레인지인 일명 부루스타가 출시해 사람들에게 커다란 사랑을 받았다. 야외에서 고기를 마음대로 구워 먹을 수 있었던 시절이다. 그리고 화투 놀이 고스톱이 국민 오락으로 맹위를 떨치던 때였다.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 장소 불문하고 고스톱판이 벌어졌다.
대학 졸업반인 친구들이 봉급 턱을 내라며 아우성쳤다. 나는 당시 비싼 삼겹살을 기꺼이 사겠다고 약속해서 우린 만났다.
그때가 비가 많이 내린 후라 사곡천은 황토물로 가득했다. 지금처럼 시멘트 다리가 흔칠 않아 반대쪽에 가려면 먼 길을 돌아야 했기에 우리는 그냥 건너기로 했다. 바지만 벗고 허벅지 닿을 정도의 황토 물살을 건너가고 있는데 갑자기 내 몸이 물속으로 쑥 들어갔다. 순식간에 가슴높이를 거쳐 목만 남을 정도였다. 도저히 물속을 걸을 수가 없어 소지하고 있던 운동화와 우산을 모두 버리고 바지만 움켜주고 헤엄을 쳤다. 그 순간에도 바지는 버릴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바지 속에 월급봉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가까스로 수영이 조금 되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라 개헤엄 정도는 할 줄 알았기에 맥주병처럼 가라앉지는 않았다. 그런데 당황해서 그런지 앞으로 잘 나가지를 않았다. 강을 가로지를 때는 물살을 비스듬히 아래쪽으로 건너야 하는 그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네 시 방향으로 헤엄쳤다.
가까스로 헤엄쳐 반대편 강둑에 도착했다. 둑길을 따라 뛰어 내려갔더니 폭이 넓은 데가 있었다. 강폭이 넓은 데는 깊이가 허벅지 정도라 충분히 잃어버린 물건을 건질 수 있었다. 강물의 유속은 뜀박질보다 느리다. 내 시선은 강물을 보며 한참을 뛰고 나니 운동화 두 짝이 춤을 추며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다시 강물에 내려가 신발은 건질 수 있었지만, 우산은 끝내 못 찾았다.
나는 우선 바지 속의 돈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물에 젖었지만 그대로 있었다. 작은 나뭇가지와 잔디밭에 지폐를 햇볕에 말렸다.
그리고 삼겹살을 맛있게 구워 먹었다. 물론 소주를 빠뜨릴 수 없었다.
지금도 친구들 만나면 그때 얘기를 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가슴 한쪽에는 내가 내 손으로 돈을 벌어 친구들에게 고기를 사주었다는데 자부심이 든다.
(25.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