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야산 산행을 한 이유는 가야산에는 교과서에서 배운 팔만대장경을 품고 있는 해인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끔가다가 광교산 산행을 즐긴다. 어느 날 광교산 가게 되었는데 ‘수지 00 산악회’에서 25년도 산행 일정표에 가야산과 합천 해인사가 있었다. 나의 동공은 일시에 확대되었고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팔만대장경이 있는 합천 해인사를 예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다. 바로 전화해 신청했다.
지난주 목요일 아침 07시 5분에 린병원 정류장에서 산악회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의 좌석은 맨 뒤에서 한 칸 앞이다. 내 옆좌석은 연세가 지긋한 분이 앉아 계셨다. 어르신도 나와 똑같은 동기로 신청해 오늘 산행을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대화 금지’라며 주무시라고 회장은 전체적으로 방송했다.
우리의 등산코스는 성주군 수륜면 백운분소에서 출발해 서성대-->칠불봉--> -->상왕봉-->토신골-->해인사-->치인 주차장까지 10km, 6시간 소요된다고 한다.
가야산 정상인 상왕봉을 올라가는 코스는 경치가 매우 좋은데 올라가기 어려운 만물상 코스와 등산하기는 쉬운데 경치가 만물상 코스만 못한 용기골 코스로 나뉜다.
대부분 만물상 코스를 선택했다. 나와 어르신도 만물상 코스를 택했다. 그러면서 같이 산행하자 하신다. 나도 동의했다.
나는 평소에 8,000보에서 10,000보를 걷기에 이 정도는 충분히 산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만물상 코스를 선택했다.
가야산 국립공원 앞에서 전체적인 기념 샷을 남기고 개인 사진까지 찍고 산행 준비하다 보니 어르신과 내가 가장 뒤처졌다.
그런데 만물상 코스는 결코 만만한 코스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오르막이 나타났다. 숨을 헐떡거리며 올랐다. 산악회장은 입구에서 동행하지 않고 기념사진만 찍고 우리만 보냈다. 30여 분 정도를 땀을 흘리며 올라가니 어르신이 자꾸 뒤처진다. 나는 이러다 일행을 놓치겠다 싶어 속도를 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먼저 올라가기 시작했다. 20여 미터 앞 오르막길에서 뒤를 보니 어르신은 먼저 가라고 손짓하셨다. 그런데 어르신 표정이 이상했다. 얼굴이 백지장이 되어 있었다. 나는 어떡하지 어르신과 같이 가다 보면 합천 해인사는커녕 정상인 상왕봉에도 못 갈 것 같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산악회 일행과 같이 가야겠다고 생각해 속도를 내었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르신을 어떡하지’ 하며 걱정으로 가득했다. 일행과 올라가다 안 되겠다 싶어 정상과 해인사를 포기했다. 어르신을 팽개치고 산악회 일원과 동행하는 것은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르신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5분 정도를 어르신을 부르며 기다리니 어르신이 대답했다. 너무 기뻤다. 어르신도 안심이 되었던지 고맙다고 하셨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올라갔다. 1시간 정도를 올라가니 너럭바위가 나타났다. 시간도 12시 30분이 되어 시장기를 느꼈다. 나는 이 너럭바위에서 점심을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어르신도 좋다 하시며 전망이 좋은 바위 위에 돗자리를 폈다. 그리고 아내가 싸준 김밥과 과일을 꺼냈다. 어르신은 점심 싸 오는 것을 몰랐다고 하시며 술 한 병과 안주인 육포를 꺼내셨다.
내가 싸 온 김밥과 과일을 같이 나눠 먹고 나는 어르신이 가져온 술잔을 같이 기울였다. 이렇게 해서 30분 정도 지날 무렵 안 되겠다 싶어 네이버 지도에 현재 위치를 캡처해 산악회 회장에게 전송했다. 그리고 전화했다. 우리가 있는 장소가 여기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상의했더니 우리 둘이 많이 뒤처졌다며 ‘서성재’라는 곳에서 용기골 코스로, 처음 출발했던 주차장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나는 그렇겠다고 했다.
어르신 살아온 이야기며 자녀 얘기 등을 해가며 천천히 올라갔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었고 안개가 끼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바위가 많아 이름 그대로 만물상이었다. 기암괴석이 많아 절경을 이루었다. 다만 좀 아쉬운 것은 맑은 날씨였다면 전망이 더 좋으련만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우리는 이왕 늦었으니, 안전하게 산을 타자며 쉬엄쉬엄 올라갔다. 서성재는 가도 가도 나오지 않았다. 역시 바위가 많은 오르막 비탈길은 어려웠다. 흙길은 전혀 없고 주로 돌길이었다. 역시 만물상 코스는 어르신이 오르기엔 무리였다. 나는 다른 산악회 회원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속도를 좀 내보자고 제안했다. 어르신은 그러자고 했지만, 자꾸 뒤처졌다. 커다란 바위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나는 어르신에게 사진 찍을 때 구도 잡는 요령도 가르쳐 드렸다. 어르신은 연신 고맙다고 했다. 어르신은 핸드폰의 여러 기능을 사용할 줄 모르고 오직 전화기로만 쓰신다고 했다. 어찌어찌해서 힘겹게 올라가니 마침내 서성재가 나타났다. 서성재는 우리를 반겼다. 나는 너무 좋았다. 어르신도 너무 좋아하셨다. 내려가는 길은 자신 있다고 자랑하셨다.
주차장까지 내려오는 길은 계곡을 끼고 있어 좋았다. 계곡 물소리도 좋고 물이 차갑고 깨끗해 마음조차 씻어주었다.
하산 후 식사 자리에서 회장은 나를 비행기 태웠다. 산행도 포기하며 어르신과 동행했다며 고맙다고 치켜세웠다. 상 받을 만하다며 일행들도 이구동성으로 칭찬했다. 박수까지 받았다. 나는 ‘그렇지 않다’라며 나도 좋았다고 말했다. 어르신은 나에게 고맙다며 맥주 2병을 그 자리에서 사셨다.
산행을 끝내고 난 느낌은 역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산은 말없이 항상 똑같은 자리에서 많은 혜택을 주며 가르침을 준다.
(25.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