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화분에 물을 준다.
조그마한 화분에 아담하게 꽃을 피워낸 화초가 귀엽다. 커다란 화분에는 우람한 나무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가장 큰 화분에는 ‘벤자민’이란 나무가 있다. 이 녀석 나이는 우리 큰아이와 같다. 1991년도에 청평빌라 입주할 때 선물 받은 것이다. 그때는 이렇게 크지 않았다. 지금은 줄기 밑동이 제법 통통한 아이의 팔뚝과 같다. 올해는 어린 식물을 산 후, 화분을 별도로 구매해 분갈이를 해주었다. 그중에 ‘카네이션’이란 꽃이 있는데 이 녀석은 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가을이 시작되는 지금도 핀다. 앞으로도 계속 필 기세다. 하나의 꽃이 시들면 또 다른 게 꽃대가 올라와서 꽃을 피운다. 꽃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앙증맞을 정도로 귀엽다. 화초는 아침이면 사랑의 물을 기다린다. 잠시 꽃을 감상하는 시간의 여유를 즐긴다. 바쁜 직장 생활할 때 안 보이던 것이 요즘 잘 보인다. 바쁘게 살지 않아도 되니 좋다.
내가 화초를 가꾸게 된 배경은 정년퇴직 후 시간을 하나님께서 많이 주셨다. 뭔가 사랑을 주는 것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동안 아내가 관리하고 키워온 나무와 화초를 내가 관리하게 된 것이다. 비록 식물이지만 이 녀석도 나에게 사랑을 갈구한다. 나도 이 녀석들을 사랑한다. 화초와 대화를 나눈다. 내가 관리한 후의 나무는 생육이 좋다. 나무의 죽은 잎은 떼주고 죽은 가지는 잘라준다. 어떤 것은 싱싱하지 못해서 영양제를 사다 꽂아주었다. 지극 정성으로 가꾸니 이 녀석도 꽃을 응답해 주고 ‘행운목’과 ‘벤자민’의 잎사귀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또한 우리 집에는 난을 기른다. 올해 난이 꽃을 피웠다. 난이 꽃이 피면 집안에 경사가 있다는데 뭔가 기대가 된다. 남들은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난을 죽이기 일쑤라는데 꽃까지 선물로 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난은 한 달에 한 번꼴로 물을 흠뻑 준다. 한 시간 정도 푹 물에 담가둔다. 퇴직하기 전에는 내가 월급 받은 날 매월 17일 물을 주었다. 퇴직 후에는 연금 받는 날 25일에 이 녀석도 월급을 준다.
난을 볼 때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 난초>라는 시가 생각난다.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문장>3호, 1939. 4
가람 이병기 선생의 <난초>를 읽으면 어떻게 그렇게 잘 표현하였을까 감동한다. 존경스럽다.
난초의 가늘고 부드러운 잎, 하얀 꽃잎, 이슬이 맺힌 마디 등을 통해 자연의 청아함을 표현했다. 특히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라는 표현은 난초의 외강내유(外剛內柔)를 상징한다.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라는 구절은 난초의 세련된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또한 난초를 의인화해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두고’라는 표현은, 세속을 초월한 고결한 삶을 예찬하였다. 이는 시인의 고결한 삶의 태도를 반영한다.
한때는 가람 이병기 선생을 너무 좋아해 그분을 흠모했다.
그분처럼 깨끗한 삶, 고결한 삶을 살고 싶다.
(25.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