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적이지도 않으면서 뭔가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오만함은 인간의 절대적 탐욕인듯하다. 특히 기존에 유효하지도 않고 가당치않았던 직업에 몸담다가 수많은 실패와 고통을 겪고나서 다른직업을 찾음으로써 삶의 활력을 되찾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사례는 대부분 자신의 능력을 정당화하는데 있다. 강사를 하다가, 운동선수를 하다가 결국 냉대받고 멸시받았지만 그런 이미지와 달리 다른 숨겨진 면모를 개발하여 부정적인 요소를 승화시키려한다. 강사는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교육적 자질은 없었지만 베포가 크고 입담이 좋기로 소문난다면 방송이나 예능을 할수도, 운동선수가 운동에 소질이없지만 조각같고 비율이 좋은 신체조건으로인해 모델이 될수도있는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다양한 성격, 상황에 따라 자신의 욕구를 유연하게 반영할수있는 입체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자아, 직업 하나에 결부되어 일원적인 정체성으로 묶여져있다는것은 사실상 도구적 자아라고밖에 할수없다. 부모밑에서는 내가 원하는 욕구마다 자유자재로 감정을 표출하거나 어릴적 하던 소꿉놀이, 전쟁놀이, 인형극에서만큼은 내가 원하는 존재를 거리낌없이 묘사할수있고 그걸 "유아기 시절 철없던 놀이"라는 틀 안에서 충분히 인정될수있는 시기이며 자유롭다. 존재 의지를 멋대로 관철시킬수있는건 어쩌면 순수한 인간의 모습이어야만 할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직업을 가지고 주변인으로 하여금 자아가 보여지는 물상에 의해 특정된다. 그리고 이렇게 규정되는데에 가장 큰 문제점은, 타인의 행위에 따라 존재를 반영하는 "행동주의"로 개인을 식별한다는것이다. 특히 한국사회가 그러한 부분이 팽배하다. 즉, 누군가의 행동을 기반으로 태도랑 연결지어서 "성격과 무관한 상태" 로써 성격과 행동 이 두가지를 분리시킨다. 그리고 행동은 성격에서 도출되는 최종 결정체로 보며 성격은 행동에 변화를 가져다줄 "동기화된 의지"라고 보는 시각이 한국사회에서 주로 나타난다. 언뜻보면 이건 매우 정합되며 논리적이며 심리학적으로 보여져도 사실은 아니다. 여기서의 맹점은 개인의 성격에 의해 일괄되어지는 행동이 아니라 행동의 원인이 성격에 있으며 결과론적인 행동에서 성격을 수정하는것을 하나의 목적이라고 치부한다는것이다. 그러나 성격에서 이미 선험적인 행동양식이 피력되어있다는 원리 따위는 거부하면서말이다. 즉, 행동이 성격으로의 존속관계를 파악하지못하며 행동은 어떠한 관습으로만 본다는것이다.
이러한 행동과 성격간의 미치는 상관관계를 간과하고, 그대로 방치하여두었기에, 개인 잘못의 원인은 왜곡된 자아나 불안정성이라는 성향주의에서 찾기보다는, 한 개인의 태도나 사회,가정 교육의 부재, 외현적인 상황판단력 등 이러한 "인격적인 가역성"에만 귀결시킨다는것이다. 그렇다, 모두 이러한 데에 원인은 지극히 공통 분모가 상위개념으로 지배한다. 바로, 성격은 조직적으로 설계된 과학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도덕이나 규범,질서와 같은 상례적인 가치"라고만 생각한다는게 한국사회가 개인을 보는 관점이다. 그리고 일상속에서도 너무나 그런 가치관은 비일비재하다. 조언을 할때도,충고를 할때도, 상담을 할때도 항상 "니 마인드를 고치면 해결된단다" , "지금 당장 a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왜 자꾸 B라고 생각해?" , " A가 뭔 고민이냐, B가 더 중요한데" 라는 성향에 접근하지못하고 역시 타인 의식하고 경쟁만 좋아하고 투지를 분출하려는 한국사회답게도, 항상 끊임없이 고민마저도 가격표를 비교하듯이 타인의 인생관을 폄훼하고 깎아내리려는 시도는 늘 있어왔다. 특히 "중요한게 뭐냐?"는 질문보다 차라리 "중요한것 중에 뭐가 더 중요하냐?"라는 질문에서는, 기존에 중요했던것들을 오히려 부정적이며 필요없는것들이라며 열외시하는 경향이 높다. 가족은 얼만큼 삶에서 중요한가요? 라는 질문을 하면 "세상에서 매우" , "제 인생이죠 뭐ㅎㅎ" 같은 상투적이고 풍요로운 상상으로만 대답하는건 잘하지만, 막상 "삶에서 가장 중요한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앞에서는 "돈"이라고 말할것이다. 여기서 볼수있는 의의는 중요,필요,긍정적,부정적 가치들을 막론하여, 주목하고 매료되는 혹은 흥미나 관심거리가 삶이라는 화두에 오른다면 자신을 기쁘게 할수있었던 다른것들과 "비교"만 하는데 열중한다는것이다.남을 비교하고 평가하려는 심리 기저는 이미 거기에 다분히 배태하고있었던것이다. 얼마전 유튜브에서 누군가를 상담해주는 영상을 봤다. 배우출신이었던 그는 무당이 되어 출연하는 사람들의 제각기 고민에 대해 조언을 해주고 마음을 위로해주는 컨텐츠를 한다. 그를 시청하는 나로써는 한가지 유념할 점이 있었다.물어보살과 같은 덧없고 본인 의지만 맹신하라는 식의 허울뿐인 충고와는 달리 개인의 심경 변화나, 왜 그런 행동으로 이어졌는지를 출연자의 인생을 토대로 독파한다는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처가 남들에게는 어떻게 보여지는지도 설명해주는데 중요한건 절대로 의지가 있던없던 개인을 문제삼지않으려는 그리고 자신의 생각에 치우치지않는 중용의 자세이다. 무당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렇게 수평적인 구도를 견지한채로 내담자와 고민상담을 이어나간다는건 쉽지않다.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 치우친다. 그리고 누구든 자신이 해낸것은 남들도 그럴만한 의지가 "가능성"에 잔류할거라는 착각을 하고산다. 그래서 대부분이 누군가의 고민 앞에서는 "자신의 것"으로 흡수되지못한채 항상 회의적이다. 눈에 보이는것은 "이렇게 하면되고 저렇게 하면 불가능하고"는 충분히 증명가능하다. 그리고 단기간에 이룰수있다. 그러나 장기간 세월에 인간의 어떠한 문제점이나 정신적, 실재적 고민은 해결의 여부는 입증될수없으며, 오직 "해결을 할수있는 정량의 자아"에 있어서 서로간의 차이가 있으며 최대한 자신의 내면과 상대방의 고민에 할당된 심리적 저항감을 조율해나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그리고 타인의 의지에 투영한 1인칭 자신의 의(意)지 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