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계신 그대 안녕하신지요.
오늘은 기다리던 비가 내리고 있어요. 아마도 엊그제 산책 길에 보았던 나리가 선명한 오렌지 빛깔로 물이 올라 있을 테고, 바닷가에서 부서지던 파도만 힘없이 바라보던 파초도 기운차게 흔들리며 뿌리를 깊이 내릴 것입니다. 모두가 기다리던 하늘의 선물이니 괜히 신이 납니다. 바라고 바라던 것이 하늘에 닿아 답을 얻을 땐 우리네 삶이 행복으로 다가감을 느끼지요.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은 희망이랍니다.
그대를 떠나 남쪽으로 둥지를 튼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늘은 희망을 노래하는 여인을 이야기할까 합니다. 그러니까 그녀도 만난 지 한참 되었지요. 제가 당신을 떠난 후 즐거운 삶에 한몫하는 것으로 원하면 아무 때나 내 손에 푸른 야채를 담을 수 있는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 아시지요? 그녀는 제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서 싱싱한 야채며 생선을 취급하는 상점의 주인입니다. 그녀가 겨우 낯을 익히려는 옛 주인을 대신해 제 장바구니에 고추 한 개를 더 담아 주었을 땐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었지요. 너무나 몸이 드러나는 바지와 화려한 화장이 도무지 생선을 파는 여인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날이 지나자 그녀가 어린 두 아들과 홀로 살면서 상점 위층에 방을 만들어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녀는 이혼녀이고 어딘가 섬에서 도시로 왔다고도 누군가가 전해 주었지요.
그 후 전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곳에서 콩나물도 집고 두부도 사게 되더군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는 듯싶고, 항상 늦게까지 상점을 여는 부지런함을 보여주더군요. 하긴 가게의 철문을 내리면 그녀의 집은 공기조차 들어갈 것 같지 않더군요. 한 번은 웬 청년이 수박을 집으로 갖고 오는데 알고 보니 어느새 자란 아들이 어머니를 돕고 있더라고요. 학교에서 운동부에 소속된 큰 아들은 엄마와 떨어져 있다고 제게 말하데요.
여느 날처럼 물건을 집어 들고 발길을 돌리려는 제게 그녀가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아껴 모은 돈을 언니처럼 믿은 사람에게 사기당했다고요. 아들 둘을 데리고 미국에 가서 살고 싶었다며 푸념을 할 땐 마음이 너무 아팠지요. 사모님이라고도 하고 때로는 선생님이라고도 부르는 그녀가 너무 딱해 언니라고 부르게 하고 싶었지요.
그 후로도 그녀는 늘 똑같이 매무새를 단정하게 하곤 늘 씩씩하게 아침저녁으로 애를 씁니다. 이제는 그녀의 짧은 머리와 날씬한 몸매 지칠 줄 모르고 하는 화장이 그녀의 근면함으로 다가와 보기도 좋답니다.
헌데 한동안 그 부지런한 여인의 상점은 철문이 굳게 내려져 있었지요. 아픈가? 상점을 옮기려나? 궁금증이 일어났지만 집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며 그녀를 잊고 있었지요. 한참 만에 상점 앞을 지나며 건장한 남자들이 그곳을 수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지만 저는 무심히 지나쳤지요. 한 열흘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말끔하게 단장한 가게엔 ‘희망 부식’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상호 밑엔 ‘희망 플러스 1호점 ’ 오픈식이라고 적혀 있더군요.
반가운 마음에 제가 먼저 물었습니다. 그동안 왜 안 보였느냐고 웬 오픈식이냐? 고 말입니다. 그녀는 생글거리는 얼굴로 제게 답합니다. ‘사모님 저기요, 어떤 부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돈을 남기셨는데요, 그 이자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요. 근데 제가 첫 번째로 당첨됐다니까요~~’ 저는 참 기뻤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단어는 사랑. 희망, 행복입니다. 어둠 속에서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희망은 어둠 속에서 만들어지는 신의 선물입니다. 나는 그녀와 대화를 하는 내내 희망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보았지요. 살짝 들여다본 그녀의 살림방은 여전히 위층에 있었지만 커다란 통유리로 갈아 끼웠으니 숨쉬기도 훨씬 수월 할 듯했어요. 삶이 고달프고 어려운 이에게 희망을 선사한 하늘에 계신 그분은 여전히 누군가의 가슴에 살아있는 것 이겠지요.
박노해 시인은 말했어요.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라고요. 누구나 조금씩 사정은 다르지만 어렵다고 합니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연로하신 분들은 그들 나름대로, 저라고 고민이 없겠습니까? 당신이라고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기다리며 희망을 갖고 살 때 우린 더 행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껍니다. 나 자신을 희망으로 만들어 가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오늘은 비가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슴속에 응어리가 있는 사람들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장대비가 하루 종일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대 사랑하는 이여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