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 수빈이

by 김인영

"아저씨 바람을 느껴봐요.

바람은 거세졌다 다시 부드러워져요."

아저씨는 분명 11살 소녀를 향한 카메라를 들고 계신 분 이리라.

새벽 거실 창을 여니 파르스름한 달이 찬 바람과 함께 나를 맞는다.

밤이 길었던 지 거실에 나와 있던 남편을 들여보내고 켠 T.V에 비치는 영상이다.


신안군 비금도에 어린 소녀가 백사장에 글을 쓴다.

*힘들어도 내가 있어요*

큰 하트로 선을 치는 소녀는 바닥에 구멍이 난 젤리 신발을 신고 있다.

말간 얼굴에 어린 미소가 예쁘다.

하지만 섬 소녀의 일상은 고되기만 하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빤 더 이상 밭농사도 고추 농사도 지을 수없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엄마는 여전히 한국말이 서툴러 수빈에게 한글 읽기 공부를 한다.

수빈이는 논 길을 따라 걸으며 개구리를 잡는 동생과 벗하여 마을버스를 타고 등교를 한다.

공부를 잘한다고 선생님은 칭찬하시고 그림도 잘 그리고 화도 잘 안내는 친구라고 벗들은 좋아한다.

집으로 돌아온 수빈은 엄마의 고단한 일상을 돕기 위해 서둘러 숙제를 끝낸다.

마늘도 까고 빨래도 널고 동생도 돌본다.

마음 좋은 이웃이 들고 온 과일도 깎아선 의자에 앉아계신 아버지에게 먼저 건넨다.

아빠를 대신하여 집안의 모든 것을 하여야 하는 엄마는 저장고에서 쥐가 파먹어 더 이상 쓸모가 없는 많은 양의 보리쌀을 들고 들녘에 나가 자연의 것 들에게 먹이로 펼친다. 나는 반성한다. 나라면 가까운 쓰레기통을 찾아 버리고 힘든 내 삶에 분통을 터뜨릴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이웃의 고모가 찾아와 땅에 늘어진 가지 나무를 보며 가지에게 지지대가 필요하듯 인간에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며 수빈 가정을 딱해한다. 맞다.우리는 서로에게 지지대가 될 일이다.


수빈이가 생각하는 행복을 묻는 기자에게 ' 엄마일을 열심히 도와 드리고 열심히 살면 병든 아빠와 함께 행복해질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힘든 형편에도 엄마가 자신과 동생을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미래에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느냐고 묻는 딸에게 선생님이라고 엄마는 답하고

자신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니 미술 선생님이 되겠다고 딸은 명쾌히 미래를 결정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곳인가? 그들은 유순한 눈빛을 지닌 섬 마을의 모녀였다.

'누가 나에게 신의 모습을 그리라 한다면 나는 산 짐승들의 유순한 눈에 비친 저녁 놀을 그리겠다.'

고 말한 시인을 기억한다. 새벽 이른 시간에 나는 기적 같은 따스함을 경험했다.


나는 오늘도 바닷가에서 바람과 함께 노래하고 토끼풀을 꺾으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수빈이가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을 상상하며 가까운 미래에 세상에서 제일 큰 꿈을 꼭 이루기를 기도한다.

효녀 수빈이 ~힘들어도 내가 있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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