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시누님께
만날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만 늘어난다. 오랜만에 오래된 벗들을 만나러 새벽잠을 설치고 서둘러 집을 나왔지요. 언제 오느냐고, 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저 역시 같은 마음으로 묻고 답을 합니다. 마음이 몸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 앞에 꽃향기가 천지를 진동하던 봄의 터널을 지나, 드디어 오늘. 초록이 무성한 날에 만날 수 있게 되네요. 살아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거리가 멀어도 이 세상에 남아있기 때문에 허락된 만남이지요. 하지만 이 봄. 강물에 띄워 보낸 형님은 가을이 깊어 단풍이 들어도 다가 올 북풍한설에 아무리 외친 들 뵐 수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창밖에 바람이 스치면 제 마음에도 바람이 부는 듯 우리가 시누님과 올케로 인연을 맺어 함께 지낸 시간이 저를 흔듭니다. 어떠신가요?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자꾸 묻고 싶어요. 그리고 답을 듣고 싶어요. 생전의 그 모습과 목소리로 단 한 번이라도. 지금 계신 곳은 익숙했던 이곳처럼 조금은 힘들고 때로 웃고 계신가요. 여전히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함과 사랑의 본을 보이시나요. 궁금해요, 곁에는 누가 계신지요? 외로움도 운명으로 챙기시며 늘 당당하셨던 분. 놀라기도 잘하고 참을성 없고 눈물 많은 저를 딱해하셨는데 이제 저는 누구에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눈물을 보인답니까?
기차를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그곳에 가면 당신이 돌아와 살고 싶다던 담양이 멀지 않아요. 그때 좀 더 머무르실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가 부족했음을 한탄합니다. 왜 이제야 뒤늦은 후회와 반성을 하는지 부끄럽기만 합니다. 수척해진 모습으로 통화를 할 때 오지 말라고 하셔도 전 태평양을 건너는 비행기를 탔어야 했지요. 본인의 아픔보다 오히려 저의 건강을 염려하여 오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전 듣지 않았어야 했어요. 하지만 제가 말하잖아요. 그리 서둘러 가실 줄 몰랐다고. 그렇게 빨리 집을 비우실 줄 몰랐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씀 더 못 드린 것이 진정 큰 실수였다고.
췌장암 선고를 받은 신 후 담담하게 말씀하셨지요.~'난 지금 세상을 하직해도 여한이 없다.라고요.
구르는 기차 바퀴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습니다.
때로 천천히 때로 속력을 내며 평행선을 달리는 소리를 들으니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혹시 형님도 이승에 살면서 놓쳐버린 그 깊고 아련한 태곳적 생명의 소리를 들으며 쉼을 갖고 계신가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단지 조금 멀어진 것뿐입니다. 시인은 세상사 모두가 공부라고 말 했지요.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오는 일 또한 마지막 큰 공부라고 생각하면 조금 견딜만해진다고 ~
언젠가 언젠가, 우리가 또 다른 별에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날이 와서 이번 생에서 받기만 하고 돌려드리지 못한 그 큰 사랑을 갚을 수 있으면 얼마 좋을까요.
그날이 오면 푸른 하늘 아래 펄럭이던 만장과 강물을 곱게 수놓으며 흘러가던 장미꽃들이 함께 일어나 환호성 하며 새로운 세상을 다시 만들 겁니다. 사랑합니다, 그리운 시누님. 2023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