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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영 Oct 27. 2023

독립운동가 최재형 독후감


    <시베리아의 난로 최 페치카문영숙 지음>을 읽고  

                                                      

비 내리는 토요일 저녁. 주문했던 책을 받아 가방에 넣으며 조금 설레었다. 책 표지의 사진에 보이는 나보다 먼저 세상을 살다 가신 그분, 넥타이를 맨 양복 위에 얹힌 웃음기 없는 얼굴과 보송보송한 손등이 왠지 정겹다.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콧수염과 그다지 크지 않은 눈은  이웃집 아저씨이다. 우리는 함께 집을 나섰다.   

    긴 여름에 책 몇 권 읽지 못한 채 지나갔다고 반성하며 과히 두껍지 않은 책을 30여 분 읽다가, 지하철을 내려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함께 탄 댓 살 정도의 어린 여자아이가 투정을 부린다. 어제도 목욕을 했으니 오늘은 싫다고 부모에게 떼쓰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우리의 영웅 최재형의 이야기도 그렇게 시작된다. 목욕으로. 


훗날 시베리아 한인들의 영원한 베치카로 불리게 된 따스한 분 최재형. 열한 살에 집을 뛰쳐나와 굶주림과 무명의 누더기 옷. 그리고 엉덩이까지 치렁치렁한 머리로 거리를 헤매다가 세계를 돌며 무역을 하는 선장에게 발견되어 놀람과 신기함으로 생전 처음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장면으로 책은 시작된다. 

   러시아의 극동 연해주와 시베리아 일대는 일본의 식민 통치를 피해 두만강을 건넌 애국지사들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곳이다. 그곳은 지리적으로 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치열한 항일 운동이 펼쳐진 곳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의병들과 독립투사들의 뒤에 최재형이라는 대부가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는 의병들을 먹이고 입히고 한인 후손들을 위해 32개나 되는 학교를 세웠다.


나는 흥미와 긴장감과 감사함으로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무더위에 지친 몸과 정신이 긴장되고 단단해지는 느낌이었다. 춥고 살기 어려웠던 곳인 연해주의 페치카. 난로처럼 따스한 그분의 조국과 민족을 향한 사랑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어느새 나도 그분이 베푸신 나눔과 교육의 중요성에 마음을 보태며 전화기를 들었다. 비록 내 민족은 아니지만 전기도 전화도 없다는 필리핀 오지마을의 어린이에게 학교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일대일 결연 후원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아주 약소한 금액을 보내기로 약속했다.   

    항일운동을 위하여 재산과 능력과 기회를 연해주 한인공동체에 바친 그분은 노비인 아버지와 기생이었던 어머니의 아들로 1860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났다. 흙비가 내리던 해 지독한 가뭄과 대홍수를 겪고 발생한 콜레라에 어머니를 잃은 재형. 자식과 후손들에게 더 이상 노비의 굴레를 물려주기를 원치 않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두만강을 넘어 아라사 (러시아)로 향한다.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아버지와 가족들은 온종일 밭을 일구고 자갈을 주우며 몸이 부서지라 열심히 씨앗을 뿌리고 가꾸었다. 


   아라사 말도 배우고 세상을 사는 지혜도 열심히 배워야 한다는 아버지의 교육열 덕분에 재형은 러시아 정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의 조선인 첫 학생이 되었다. 재형은 중국 아이들보다 뛰어나게 공부를 잘했다. 책을 많이 읽은 덕분이었다. 형수의 구박을 피해 숭늉 그릇을 집어 던지고 가출을 한 어린 재형은 끝이 보이지 않는 벌판을 걷고 또 걸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에게 도와 달라고 빌며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어렵고 힘들 때  먼저 어머님을 찾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하다. 신을 대신하여 보내주신 우리들의 어머니. 

    하늘과 어머니를 향한 기도 덕분인가 선생은 우연히 만난 선장과 부인 나타샤의  보살핌과 사랑 덕으로 빅토리아호를 타고 당시 조선인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세계 곳곳을 돌아보게 된다.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은 그에게 원대한 꿈을 꾸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게 된다. 선장 부부가 시모노세키. 마카오.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 아프리카의 탄자니아까지 그리고 포르투갈의 리스본. 세계 곳곳을 다니며 각 지방의 특산품을 모아 사고파는 무역을 하는 동안 나타샤가 들려주고 읽어주는 책을 통해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정직이 재산이라는 것을 배웠으며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는 러시아어는 물론 중국어까지 능통한 인재 중의 인재였다. 특히 어머니 같은  나타샤가 이야기해 주던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의 도전 정신을 마음에 품었다. 그리고 그를 닮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나타샤에게 표트르 대제처럼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싶다고 말한다. 늘 초이라고 부르던 선생에게 나타샤는 까레이즈 (조선인) 보다는 러시아인으로 사는 것이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재형에게 더 좋을 것이라고 말하자 고민 끝에 그는 세례명으로 선장의 이름과 표트르대제의 이름을 따서 “표트르 세메노비츠  최”로 받는다. 


문득 나의 젊은 날이 떠오른다. 한때 해외에 거주했는데 그들에겐 ‘최’발음이 어려워 “미시즈 초이”로 불리곤 했다. 나 또한 좋은 분들을 만나 어렵고 힘든 시절이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되는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니 좋은 만남의 축복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의 경험으로 새삼 깨닫는다.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따르기 마련, 선장 부부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는 그리운 아버지를 찾아가 눈물로 재회한다. 승낙 없이 국적을 바꾼 것을 사죄드리는 재형, 그는 성인이 된 자식의 삶의 결정을 이해하는 아버지의 너그러움에 감사하고 형수와도 화해를 한다.  

   얀치헤로 돌아와 새집도 짓고 결혼도 하며 연해주 전체에서 러시아어를 가장 잘하는 조선인 통사가 되었다. 러시아 병영에서 일을 하며 내륙의 한인들에겐 소, 돼지, 닭 등을 길러 군납할 수 있도록 했고, 마을에는 최초의 조선인 학교와 공원을 세웠다. 

  그는  이른 나이에 거부가 되어 동포를 도왔으며 독립운동을 위해 정신적 물질적으로 커다란 공을 세운 분이다. 조선 사람들의 신뢰와 러시아 정부의 신임을 얻어 얀치헤의 도헌이 되어 러시아 정부로부터 두 번이나 은급훈장을 받았다. 최재형은 리콜라이 황제의 대관식에서 머리에 갓을 썼기 때문에 대관식에 참여할 수 없었던 조선의 특사 자격 사절단으로 참석한 민영환을 찾아가 조선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자세한 국내 사정을 처음 알게 된 재형은 러시아 국적으로 살고 있지만 자신의 보이지 않는 뿌리가 짓밟히고 있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서서히 조선의 독립을 위해 본격적으로 발걸음을 내디딘다. 한인들이 그를 어찌나 존경하고 따랐는지, 1907년 연해주로 건너온 안중근은 “집집마다 최재형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라고 기억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7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토 히로부미와 그 수행원들이 쓰러졌다. 안중근의 권총은 최재형이 건넨 8연발 단총이었다. 나는 몰랐다. 나만 몰랐을까?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도 몰랐을 것이다. 우리의 영웅 안중근이 성공적인 거사를 이루기 위해 또 하나의 영웅 최재형의 집에서 총 쏘는 연습을 하며 지낸 것을. 2023 년 이 가을에 조국에 몸 바치겠다고 맹세하며 손가락을 자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가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자유와 행복은 이 책에 언급된 수많은 항일 투사와 독립운동을 위하여 애쓰고 목숨까지 바치신 분들의 희생과 노력 위에 마련된 것임을 오늘을 사는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봄이 다시 시작된 것임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넘쳐나는 자유와 물질의 풍요 속에 이 시대를 사는 대한민국의 개인과 그렇게도 빛나 우리의 민족정신은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반성해 본다. 평생을 한인교육사업과 독립운동에 전념하시다 1920년 4월에 재판도 없이 총살을 당하신 그의 죽음은 러시아에 사는 한인들에게 커다란 슬픔을 안겨 주었다. 큰 별이 떨어진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 민족 전체의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 소개된 손자가 쓴 글을 보며 최재형 님은 삶의 안과 밖이 모두 성공한 분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 할 수 있었다. 손자는 말한다. “할아버지는 멋지고 탁월했으며 전설적인 인물이었다고. 대부분 혁명지도자와 달리 자상한 남편이고 자상한 아버지였다고. 그리고 할아버지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신 분이었다고.” 

    나 또한 이번 기회를 통하여 이렇게 멋진 분이 우리 역사 속에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는 큰 기쁨을 느꼈으며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읽어 보기를 강력히 권하고 싶다. 그들이 이 한 권의 책을 통하여 선생의 도전 정신과 인간을 사랑하는 따스함과 조국의 중요성과 역사의식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최 재형 그분은 내 인생에서 곁에 두고 살고픈 분이다. 세상을 좋게 변화시키고 주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부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등에 민족과 조국의 무거운 두 짐을 지고 묵묵히 사막 같은 세상을 건넌 분이시라고 생각한다. 정작 자신은 언제 쉼을 가졌으며 언제 물을 마셨던가.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는 말은 옳은 말이면서도 아픈 말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 머물고 있는 지금 내 귀에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이슬처럼 사라진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하얼빈 역에 울려 퍼지던 안중근 의사의 힘찬 “코레아 우라! (대한 제국 만세)”와  총성이 들린다.  


시 한 편을 조금 발췌하여 우리의 각오를 다지고자 한다. 어찌 안중근 열사만의 이야기겠는가? 우리의 최재형과 모든 독립투사들에게 드리는 애국 시이며 헌정시라고 생각하며 옮겨본다. 


     안중근 황봉학

 

 세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진 1909년 10월 26일 북만주 하얼빈역

그 총성은 삼천만 겨레의 울분이었습니다.

그 총성은 조국의 아들이 부모에게 하는 효도였습니다.

그 총성은 조국의 지아비기 아내를 지키고자 하는 사랑이었습니다.

그 총성은 이 나라를 지켜나갈 아이들을 위한 가르침이었습니다.

그 총성은 오천 년 역사를 지키는 증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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