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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영 Jan 20. 2024

영화와 음악이 만난 자리(마지막 4중주)

  영화와 음악이 만난 시간 (마지막 4중주) 



2024년 1월. 눈이 많이도 왔다.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던 눈을 밟고 집을 나서다 가파른 언덕에서 오토바이가 뒤집어지는 것을 봤다. 

못마땅한 얼굴로 털고 일어나는 중년의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안전을 확인하곤 더욱 조심스레 발걸음을 떼어 놓는다. 약속이 없다면 이리 서둘러 위험을 감수하며 외출하고 싶지 않다.

전에는 눈만 오면 나가고 걷고 높은 산도 마다치 않았건만 이젠 불확실성에 목을 매고 불안해한다.

 다정한 친구가 초대한 곳에서 인문학 강의를 듣기로 했다. 집에서도 가깝고 좋은 강사님을 모시고 보고 듣는 시간이라 무척 기대가 되기도 했다. 친구의 배려로 언니와 동생도 함께 가기로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 님의 설계로 지어진 JCC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귀한 시간을 갖고 돌아왔다.

어제 오후의 감동이 아직 녹지 않은 산꼭대기의 눈처럼 내게 가까이 머물고 있다.

난 지금 몇 시간째  베토벤의 후기 작품인 ‘현악 4중주’ 14번을 듣고 있다.

흔치 않은 오전의 풍경이다.

어찌 된 셈인지 말년의 베토벤은 현악 4중주를 많이 작곡했다고 한다.

영화의 제목은 ‘4개의 사중주’였다. 명품배우들의 열연과 영화 속의 음악으로 인생을 생각하게 되는 시간은 너무도 즐겁고 소중했다.


 이 영화는 현악 4중주 14번 악보를 보여주고 들려주고 우리가 잘 아는 황무지의 시인 엘리엇의’네 개의 4중주‘라는 시로 시작한다. 

 네 개의 4중주  (Four Quartets) T.S.Eliot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아마도 모두미래의 시간 속에 있고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들어있다모든 시간이 영원히 현재라면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것혹은 끝이 시작을 앞선다고 해야 할까그리고 끝과 시작은 늘 그곳에 있었고시작의 이전과 끝의 이후엔 늘 현재가 있다.’

 

영화는 4명의 연주자의 이야기이다. 친구며 스승이며  부부인 그리고 연주자 부모를 둔 외롭고 엄마의 사랑을 갈급해하던 딸의 이야기이다. 25 년간을 함께 팀으로 연주해 온 그들이 아픔 관계 우정 등의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한계를 알고 내려놓고 떠나며 비우는 가운데 팀을 해체하지 않고 계속 연주해 나간다는 내용이 결말이다. 


작품 속에 흐르는 현악 4중주 14번은 보통의 경우 4악장으로 끝나는 것과는 달리 7악장을 쉬지 않고 이어서 연주해야 한단다.  그러니 어찌 불협화음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하지만 연주를 멈출 수는 없다. 서로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며 끝으로 가야 한다,

베토벤은 우리 인간들의 삶도 어쩔 수없이 살면서 나타나는 불협화음을 견디고 이기며 화합하여야 한다는 것을 이 곡을 통해 알려 주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인생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불협화음을 깨우쳐 주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망가진 존재이므로 고쳐서 다듬어 지어야 한다고 했던가,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나타나는맨하튼에 위치한  '프릭컬렉션'의 ‘램브란트’의 자화상의 눈빛과 눈 쌓인 뉴욕의 센트럴 파크까지 한 겨울 마음을 따스하게 데워주는 살롱의 휴식을 갖고 나온 오후 2시의 일탈이었다.  

영화 속의 대사를 기억한다. "나는 늙어가지만 최고의 전성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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