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영 이별 영 이별

영영 이별 영 이별

by 김인영

봄이 머물다가 떠나는 길목엔 사방에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걷고 담소하기에 딱 좋은 날이다. 지는 것이 아쉬운 듯 희고도 붉은 꽃들이 흐르는 물소리에 얼굴을 돌린다. 미세먼지가 아름다운 입자였으면 하는 바람. 숨 쉬며 맞는 아침 공기가 밤사이 꽃술에 담긴 맑은 이슬이고 노루와 사슴이 놀다가 목을 축이는 것이 내가 마시는 물이라면 좋겠다.

한 예술인이 500년도 전에 사시던 분의 아픔으로 나를 끌었다. 아직 언덕 위 밤바람이 찬데 그녀는 단정히 한복을 차려입고 가르마를 반듯하게 가른 쪽진 머리를 하고 긴 시간 영혼의 아픔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응대하는 듯 가끔 담장 뒤 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영영 이별한 짝을 찾으며 피를 토해내듯 한 많은 삶을 노래하고 있었다. 정순왕후의 추모행사장이었다. 아마도 오래전 내가 지금 앉은자리를 그녀는 거닐고 있었으리라. 평생 님을 그리며 살던 이가 떠난 자리에 그녀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봄날 별과 함께 모여 바람 부는 동망봉 언덕에 모였다.

한 때는 국모이었고 여러 해 노비로도 살았던 여인. 세조에 의해 영월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삶을 마감한 초록의 아이로 만난 지아비를 억울하게 떠나보낸 여인.

사람들은 귀양 가는 단종과 정순 왕후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애타게 바라보며 헤어진 그 다리를 영영 이별 한 다리라고 이름 지었다. 청계천에 위치한 영도교란다. 영원히 건너간 다리. 영영 이별 영 이별

얼마나 가슴 저미는 문장인가. 그녀는 조선의 6대 왕인 단종의 부인이었다. 15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숙부에 의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쓰디쓰게 삶을 마감한 왕의 부인.

후에 사육신들의 복위 운동도 있었으나 그들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장한 생을 마감하기도 한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녀를 따라 궁에서 나와 시녀들과 머물던 정업원이 나의 집과 가까이 있었음을 오늘에야 알게 된 나는 저녁 내내 부끄러웠다. 숭인동 어딘가에서 시녀와 함께 동냥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면서도 세조가 내리는 음식은 거절하였던 기개가 고귀한 인품에 덧입혀진다. 나중엔 천에 염색을 하여 떳떳한 노동의 대가로 생활을 꾸려가며 당당했던 여인 가슴엔 남편 나무를 심고 평생 그리며 살던 여인. 박정자 님의 80분에 걸친 모노드라마 같은 낭송을 들으며 부끄러웠던 이유를 나는 안다. 함께 울려 퍼지던 해금과 기타의 절절한 선율에 가슴이 저민 이유를 안다. 바로 스스로를 잘 들여다보지 못한 까닭이다.

난 얼마나 가진 것이 많은 여인인가. 누구에게 빼앗긴 적 없고. 상대적 이긴 하나 누구보다 많이 갖고 나름 누리고 살고 있다. 타인의 동정과 연민의 시선을 받아본 적은 더더욱 없다. 다만 나이 들어갈 뿐. 나이 든다는 것이 그렇게 슬픈 것만도 아닐진대 때로 가라앉고 스스로를 작은 방에 가두기도 한다. 젊은이들의 부족한 것이 눈에 들어오고 잘못을 깨우쳐주기 위해 입이 근질거린다. 가끔씩 무릎이 힘들지만 만보 정도를 늘 걷고 산다. 건강이 특별히 나쁘지도 않건만 건강 염려증도 있다. 다가오지 않은 근심의 보따리를 삶의 중심에 매달고 살며 균형을 잃고 있지는 않은가. 긍정의 힘을 믿자.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밤이 자연스레 생각나게 해 준 이 밤이 고맙다.

‘시집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들어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마음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다. “

역사 속에서 잊힌 불우한 왕비의 모습을 잠시 들여다보고 안타까워한 순간을 마련해준 여인. 박정자 님.

새삼스레 예술의 힘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며 돌아오는 늦은 시간이 참 감사했다. 정순 왕후 그분은 이미 다른 세상에서 그리던 님의 손을 잡고 떠날 줄 모르는 미소로 만족하며 이승에서 영영 이별한 그 다리를 위에서 바라보며 자알 참고 살았노라고 말하고 동망봉 언덕에 별이 되어 밤새껏 노닐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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