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마음으로 노래하는 이성선 시인의 시다.
얼마 전 뮤지컬을 관람했다. 무대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주인공으로 채워졌다. 달려가고 넘어지고 괴성을 지르고. 천한 하인을 레이디 숙녀라고 부르고 초라한 주막을 거대한 성으로 착각하는 노인을 만났다. 한데 그 미친 사람이 별을 향하여 가자고 노래를 불렀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의를 위해서 싸우리라. 사랑만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다.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 죽음이 나를 덮쳐 와도 평화롭게 되리. 몸이 찢기고 상해도 간다. 저 별을 향하여. “
지난밤 홀린 듯 듣던 노래를 새날이 되어 다시 들으며 생각해 본다. 마침 오늘은 비가 오전 내내 내리니 계획을 비껴가기에 좋은 핑계가 생긴 이다.
내가 좋아하는 별은 닮고 싶은 별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며 가능성을 타진하는 별이다. 별처럼 사는 것은 내겐 버거운 일이다. 아파하며 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는 있어도 나 스스로 누군가의 가슴에 빛을 비추기엔 턱없이 모자라는 까닭이다.
오늘도 가진 자의 우월감이 소위 말하는 갑의 논리로 피해를 입은 힘없는 이들이 생계를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비겁해지고 초라하게 사는 현실을 들으며 가슴이 아팠다. 갑의 삶에 배인 습관의 결과로 상처 입은 한 사람이 귀한 생명을 마감하고자 했다는 기사를 읽곤 흥분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자신의 목표를 위해 애쓰는 것을 짐작하기에 그 소중한 날들의 노고가 물거품처럼 날아가고 좌절한다는 것이 나를 분노케 한다.
하지만 정상적이라고 생각하고 겉으로 멀쩡한 나는 바라만 볼뿐이다. 아파하는 사람들이 어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회복되기만을 희망할 뿐 그들의 슬픔에 아무 도움이 못된다. 그뿐인가 자녀들이 주변의 분들이 피해 가는 것을 어쩌면 다행이라고 안도의 숨을 내 쉬고 있지는 않은가?
습관적 에너지라는 말을 들었다. 그냥 관행처럼 묵과되어온 것들 직책이 낮아서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불의인 줄 알지만 못 본 척하며 지나쳐야 살기에 편해지는 행위들. 가장 가까운 친구가 모욕을 당하고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해도 내게 피해가 올까 봐 묵과하고 눈 감는 행위. 바로 이런 것이 습관적 에너지일 것이다.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 역시 떳떳지 못했다.
나는 별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별의 높고 맑음과 너그러움을 희망하면서 얼마나 초라한 존재로 살고 있는가. 돌아가는 풍차는 풍차로 보이고 낡고 추한 성은 보잘것없어 보이고 밤마다 뭇 남성의 노리개로 살아가는 여인에게 새로운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비정상이라고 누구나 생각하는 라만차의 사람 돈키호테는 거친 바람이 불어 깨운다며 죄악과 추악한 세상을 향해 용기 있게 말한다. 초라한 들꽃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주며 비겁한 세상에 결투를 청하며 깃발을 높이고 일어난다.
그는 말한다. 들어라 비겁한 자들아 너희들의 세상은 끝났고 밝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어느 곳에라도 영광을 향해가자고 외친다. 저 별을 향하여. 과연 이룰 수 없는 꿈 일까. 영웅 돈키호테를 그리워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하자고 노래한 시인이 생각난다. 이제 바라만 보지 말고 일어나 달려갈 시간이다.